유럽 기차, 세 번 취소되고 한 번은 잘못 탔다 — 유로스타·TGV·이탈리아 열차에서 배운 대처법
2023년 35일 유럽 배낭여행에서 미리 예약해 둔 기차가 세 번 취소됐다. 유로스타, TGV, 이탈리아 야간열차. 그 사이에 비행기는 7시간 연착됐고, 야간열차는 55분 지연으로 연결편을 놓쳤으며, 마지막 날엔 공항 가는 기차를 잘못 탔다. 사건마다 어떻게 벌어졌고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순서대로 적고, 끝에 실제로 통했던 것만 모았다.
1. 유로스타 취소 — 런던 마지막 밤, 빨래 돌리다가 받은 메일 (5/14)
런던 4박째 저녁 8시, 호스텔 지하 세탁실에서 빨래를 돌리며 핸드폰을 보다가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너의 Eurostar 기차는 취소되었다.” 첫 도시에서 둘째 도시로 넘어가는 첫 이동부터 취소였다.
바로 유로스타 앱에서 다른 기차를 잡으려 했는데, 한국 카드로 결제하려니 카드 번호 입력과 인증에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표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145유로짜리를 누르면 이미 없었다. 결국 거의 3배 가격의 좌석만 남아 있었고, 그걸 눌렀다. 원래 오후 2시 98유로쯤이던 표가 아침 8시 약 300유로가 됐다. 다음 날 파리에서 저녁 7시 야경 투어와 워킹 투어를 예약해 둬서 15일에는 무조건 도착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 표는 퍼스트클래스였다. 앉자마자 커피가 나오고 비행기처럼 식사가 나왔다. “역시 돈의 힘"이라고 적어 두긴 했지만,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같은 밤 건조기를 돌려도 축축한 빨래를 드라이기로 말리던 중이었다. (런던 Day 4)
2. TGV 취소 — 파리 테라스 점심에서 (5/18)
파리 4일째, 몽마르트 아래 테라스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핸드폰을 보다가 다음 날 오후 2시 파리→바르셀로나 TGV가 취소된 걸 알았다. 두 번째라 이번엔 멘붕이 아니라 “원래 이런 거군” 하는 경지였다.
문제는 대안이었다. 그 구간 TGV는 하루 2대뿐이었다. 기차로는 답이 없어서 저가항공을 뒤졌고, 다음 날 오후 3시 부엘링 비행기를 잡았다. 유럽 안 LCC는 당일에 가까워도 의외로 비싸지 않았다. 대신 그날 저녁 동행 두 분과 셋이 먹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고 일찍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도 두 분께 죄송하다.
3. 그 대체편 비행기가 7시간 연착 (5/19)
베르사유 오픈런을 마치고 12시에 숙소를 나서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더니, 오후 3시 출발이 밤 10시 출발로 바뀌어 있었다. 유로스타·TGV에 이은 3연속. 35일 중 이때가 제일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안내가 프랑스어로만 나온다는 점이었다. 귀를 기울여도 영어 안내는 없었고, 영어 할 수 있는 직원을 찾아 물어봐야 했다. 그나마 PP카드가 있어서 라운지에서 버텼고, 같은 비행기를 기다리던 한국인 모녀분께 음료 두 개를 들고 가 드렸다. 바르셀로나 숙소에 들어간 건 새벽 2시였다. 그때 정리해 둔 메모에는 “EU 규정상 2시간 이상 연착 시 250유로 보상금 청구 가능, 여행자 보험 연착 보상 확인"이라고 적혀 있다.
4. 야간열차 취소 — 전광판의 Canceled (6/7)
베네치아 마지막 날 밤 11시, 산타루치아역에서 살레르노행 야간 침대열차를 찾는데 전광판에 Canceled가 떠 있었다. 저녁 8시쯤 이탈리아어로 메일이 왔었는데 읽지 않고 넘겼던 것이다. 역에 와서야, 출발 30분 전에 취소를 알았다.
다행히 대체편은 있었다. 야간열차가 산타루치아에 서지 않으니 다른 기차로 파도바역까지 가서 타라는 것. 같은 처지의 외국인들을 따라 환승역으로 가서 새벽 2시까지 기다렸다. 세 번째라 그런지 꽤 침착했다. (베네치아 Day 3)
5. 55분 지연 — 5분 차이로 환급 불가 (6/8)
새벽 2시 파도바에서 탄 침대칸은 혼자 쓰는 방이라 바로 잠들었다. 6시 45분에 조식을 주길래 이상했다. 7시 반 도착인데 왜 이렇게 일찍 깨우지? 알고 보니 출발은 2시간 넘게 늦었는데 도착은 정확히 55분만 늦게 맞춰져 있었다. 트렌이탈리아 규정은 1시간 지연부터 25% 환급. 5분 차이로 환급 대상이 아니었다.
그 바람에 살레르노행 연결 기차를 놓쳤다. 역 안내소에 가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9시 15분 기차를 무료로 끊어 줬는데, 비즈니스석에 조식까지 나왔다. 2시간을 날렸지만 잘 먹었다. 그 뒤 살레르노에서 버스표 대신 주차권을 사고, 이탈리아 부부가 준 표로 간신히 아말피행 버스를 탄 이야기는 아말피 도착기에 있다.

6. 기차 잘못 타기 — 로마 마지막 날 (6/15)
테르미니역에서 공항행 기차는 직행 18유로, 환승 8유로. 배낭여행자니까 당연히 8유로였다. 그런데 그 기차는 24번 플랫폼에서 안쪽으로 250m를 더 들어가야 타는 곳이 나온다. 몰랐다. 타긴 탔는데 깜빡 졸았고, 30분 뒤 눈을 떠 보니 주변에 여행 가방을 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린 곳은 피우미치노. 처음 들어 본 곳이었고, 기차로 되돌아가면 2시간, 택시는 안 잡혔다.
현지 분들께 “Airport"라고 크게 말했더니 이탈리아어로 답하며 손짓으로 버스를 가리켰다. 따라가 탔는데 기사님이 “버스 티켓"이라는 말에 바디랭귀지로 됐다고 하고는 공항 근처까지 공짜로 데려다 주셨다. 3번 버스 → 8번 환승 → 공항. 이분 아니었으면 비행기를 놓쳤다.
공통 교훈 — 실제로 통했던 것
- 알림 메일은 언어와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읽는다. 야간열차 취소 메일은 3시간 전에 와 있었다. 이탈리아어라도 번역기를 돌려서 확인한다.
- 취소를 확인한 순간 재예약한다. 좌석은 분 단위로 사라진다. 한국 카드 인증이 느려 표를 놓친 게 유로스타 3배 가격의 원인이었다. 해외 결제가 빠른 수단을 따로 준비한다.
- 플랜B는 항상 저가항공. TGV 취소를 부엘링으로 막았다. 하루 2대뿐인 구간은 처음부터 비행기나 여유 있는 편으로 잡는다.
- 역 안내소에 가서 사정을 말한다. 55분 지연 때 무료 대체표에 비즈니스석이 나왔다. 말 안 했으면 내 돈으로 다시 샀을 것이다.
- 다음 도시 첫날 저녁 일정이 있으면 이동편에 여유를 둔다. 파리 야경 투어 때문에 선택지가 아침 8시 한 편으로 좁혀졌다.
- 플랫폼 위치는 미리, 기차에서는 졸지 않는다. 취소·지연이 아니어도 사고는 난다.
- 두 번째부터는 빨리 받아들인다. 멘붕 시간이 짧아질수록 수습이 빨라졌다. 세 번째 취소 때는 바로 외국인들을 따라 환승역으로 갔다.
마치며
이상하게도 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 중 여럿이 이 사건들 뒤에 있다. 유로스타 퍼스트클래스의 커피, 무료 비즈니스석 조식, TGV 취소로 일찍 들어간 저녁에 새 룸메이트 캐서린과 밤 10시 센느강에서 마신 와인, 공항까지 태워 준 버스 기사님. 그리고 “이 여행에서 교통이 순탄하게 된 게 처음"이라고 적은 바르셀로나→제네바 구간은, 처음부터 비행기로 잡아 둔 구간이었다.
이 글은 제 여행 기록과 작업 로그를 바탕으로 초안을 AI와 함께 정리하고, 직접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