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비 33만원 대신 무통장입금 쇼핑몰을 직접 짰다 — 그리고 주문제작 옷에 붙는 법
티셔츠 브랜드 WILD HUMBLE을 시작할 때 내가 정한 예산은 30만원이었다. 도안은 AI가 그리고, 옷은 주문이 들어오면 한 장씩 인쇄하고, 나는 결정과 로그인만 하는 실험. 그런데 “팔 곳"을 만드는 단계에서 예산보다 큰 숫자를 처음 만났다. 온라인 카드 결제를 받으려면 PG사(결제대행사)를 거쳐야 하고, 그 가입비가 33만원이었다.

왜 PG를 안 붙였나
처음부터 자체 쇼핑몰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주문형 인쇄(POD) 플랫폼에 크리에이터로 입점해서 판매까지 거기에 얹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심사에서 떨어졌다. 사유는 포트폴리오 보강 — 그때 내 도안은 딱 한 종류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떨어지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실험의 최종 목표는 티셔츠 몇 장을 파는 게 아니라 “이 과정 전체를 자동화 쇼핑몰이라는 상품으로 다시 파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의 플랫폼 규칙에 맞추는 것보다 내 쇼핑몰을 직접 만드는 쪽이 목표에 더 가까웠다. 문제는 카드 결제였고, 답은 의외로 오래된 방식이었다. 무통장입금.
무통장입금은 흐름이 단순하다. 주문을 받는다 → 계좌를 안내한다 → 입금을 확인한다 → 그때 제작에 들어간다. 카드사도 PG도 거치지 않으니 가입비도 수수료도 0원이다. 그리고 이게 내 구조와 잘 맞았다. 어차피 재고가 없어서 주문을 받은 뒤에 한 장씩 만드는데, 그 사이에 “입금 확인"이 한 단계 끼는 것뿐이었다. 고객 입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은 구조였다.
실제로 만든 흐름
그날 밤 AI와 함께 쇼핑몰을 짜기 시작했고, 현금 지출 0원으로 주문 가능한 페이지가 하루 만에 올라갔다. 지금 쇼핑몰에서 돌아가는 주문 흐름은 이렇다.
- 제품 페이지에서 색상(아이보리·블랙)과 사이즈, 수량을 고른다.
- 주문 모달에 이름·연락처·배송 주소·입금자명을 적는다. 다음 주문 때 자동 입력되도록 배송정보를 내 브라우저에만 저장하는 옵션도 넣었다.
- 합계는 배송비 3,500원을 포함해 보여준다. 판매가는 45,000원으로 잡았다.
- “주문 전 꼭 확인해 주세요” 안내문을 읽고 동의에 체크해야 접수 버튼이 살아난다(이 부분은 아래 법 이야기와 이어진다).
- 접수되면 입금 계좌가 안내되고, 입금 확인 후 문자로 연락하고 제작을 시작한다. 제작 3
5일에 배송 12일을 안내한다.
뒤에서는 관리자 페이지에 재고 관리를 붙였다. 색상×사이즈별로 숫자를 두고, 숫자를 고쳐 저장하면 배포 없이 곧바로 판매 화면에 반영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해당 색상·사이즈만큼 자동으로 차감되고, 0이 되면 주문 화면에서 품절로 바뀐다. 주문이 들어오면 집 PC로 텔레그램 알림이 오게 해서, 내가 화면을 계속 보고 있을 필요가 없게 했다.
물론 한 번에 되진 않았다. 테스트 주문이 “접수에 실패했어요"를 반복했는데, 원인은 사이즈를 읽는 코드가 색상 버튼을 집고 있었던 것이었다. 둘이 같은 CSS 클래스를 쓰는 바람에 서버로 사이즈 대신 “블랙"이 날아갔다. 한 줄을 고쳐서 해결했다. 흰 배경에 흰 글자로 안 보이던 “아이보리”, 엉뚱한 시즌 제품을 불러오던 주문 모달 같은 자잘한 것들도 하나씩 잡았다.
돌아가는 쇼핑몰에 뒤늦게 붙은 법
실물 샘플도 합격했고 쇼핑몰도 돌아갔다. 이제 팔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문을 받고 나서 만드는” 구조에는 내가 생각 못 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일반 쇼핑몰은 단순 변심이어도 7일 안에 반품이 된다. 내 옷은 주문이 들어온 뒤에 그 사람 몫으로 한 장을 인쇄하고, 만들어진 옷은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다. 전자상거래법에는 이런 경우 청약철회(단순 변심 반품)를 제한할 수 있는 예외가 있다. 쇼핑몰 안내문에는 제17조 제2항 제5호를 근거로 적어 두었다. 단, 조문을 뜯어 보니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했다.
- 주문에 따라 개별 생산되는 물건일 것
- 되팔 수 없어 판매자에게 회복 못 할 손해가 생길 것
- 그 사실을 별도로 고지하고 소비자의 동의를 받을 것
앞의 둘은 내 구조가 그대로 해당된다. 문제는 셋째였다. “주문제작이라 반품 안 됩니다"라고 상세페이지에 써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주문 전에 따로 고지하고 동의를 받지 않으면 예외가 사라져 반품을 다 받아줘야 한다.
그래서 주문 모달에 동의 항목을 넣었다. 안내문에는 개별 제작 상품이라는 것, 입금 확인 후 제작을 시작하며 출고까지 영업일 5~10일이 걸린다는 것, 제작이 시작된 뒤엔 단순 변심 취소·교환·반품이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제품 하자나 광고와 다른 경우는 언제든 교환·환불한다는 것을 적었다. 체크하지 않으면 주문이 진행되지 않고, 동의는 주문마다 새로 받는다. 관리자 화면에는 이 손님이 몇 시 몇 분에 동의했는지까지 기록되게 했다. 나중에 분쟁이 생겨도 근거가 남도록.
법 다음은 사이즈였다. 손으로 재단하고 봉제하는 옷은 똑같이 나오지 않고, 제조사 스펙에도 ±2cm 오차가 명시돼 있었다. 숨기면 나중에 “표기랑 다르다"는 클레임이 된다. 상세페이지의 사이즈표를 제조사 실측 그대로 바꾸고 측정 방법에 따라 1~3cm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썼다. 새 옷을 올릴 때마다 그 제조사의 실측 치수를 반드시 가져와 넣는 것을 철칙으로 적어 두었다.
내가 정리한 기준
- 돈이 없으면 길이 보인다. PG 33만원이라는 벽이 없었다면 나는 카드 결제를 붙이고 끝냈을 것이고, 재고·주문·알림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내 손으로 이해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 무통장입금은 “허술한 방식"이 아니라 “입금 확인이 한 단계 더 있는 방식"이다. 재고 차감, 품절 처리, 알림까지 갖추면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다.
- 주문제작은 반품 규정이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받으려면 주문 전 별도 고지와 동의가 필요하다. 써 놓는 것과 동의를 받는 것은 다르다.
- 파는 행위에는 규칙이 있다. 통신판매업 신고 같은 절차는 파는 규모와 방식에 따라 따로 챙겨야 할 몫으로 남겨 두었다.
솔직히 적으면, 이 구조를 다 갖춘 시점에도 옷은 아직 한 장도 팔지 못했다. 하지만 팔 수 있는 물건과 팔아도 문제가 없는 구조는 만들어졌다. 작은 브랜드라도 “브랜드"라고 부르려면, 그림과 옷만큼이나 이 재미없는 부분을 대충 넘기면 안 된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
이 글은 제 여행 기록과 작업 로그를 바탕으로 초안을 AI와 함께 정리하고, 직접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