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장편 소설을 매일 1화씩 — 무협 『무명비』 연재를 돌리며 배운 것
8월 17일부터 이 사이트의 소설 코너에서 무협 장편 『무명비』를 연재하고 있다. 지금은 30화까지 공개돼 있고, 하루 한 화씩 자동으로 올라가게 해 두었다. 글은 AI가 쓰고, 나는 설계하고 읽고 고치는 쪽이다. 이 글은 그 한 주 남짓 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고, 어디서 생각과 달랐는지 적어 두는 기록이다. 소설 본문은 인용하지 않는다. 읽는 건 연재 페이지에서 하시는 게 맞다.

출발점 — 장르와 한 줄만 주면 기획부터 교정까지
바탕은 Story Studio라는 프로젝트다. 장르와 한 줄 아이디어를 넣으면 AI가 세계관·인물·줄거리 뼈대를 먼저 잡고, 사람이 승인하면 그 기획서를 근거로 챕터를 써 내려가고, 교정 루프가 문장과 전개를 스스로 점검하는 구조다. 처음엔 혼자 쓰는 CLI 엔진이었고, 지금은 작품을 목록으로 관리하는 웹 스튜디오가 됐다. 생성 기능은 비용 때문에 로그인 뒤에 잠가 두었다.
단편 몇 화를 뽑는 건 이 구조로 충분했다. 문제는 “매일 1화씩 이어 써서 완결까지"였다.
장편은 기억력이 아니라 문서로 쓴다
연재를 결정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코드가 아니라 조사였다. 100화, 300화를 실제로 완주하는 웹소설 작가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모아 보니 공통점이 뚜렷했다. 로그라인에서 시놉시스, 회차 구성표 순으로 설계도를 먼저 만든다. 결말부터 거꾸로 정한다. 떡밥은 심은 회차와 회수 예정 시점을 표로 관리한다. 설정집은 연재 중에 바꾸지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는 쓰지 않고 앞 회차를 읽으며 점검한다. 비축분을 열 화쯤 쌓아 두고 발행한다.
한 줄로 줄이면, 프로는 디테일을 기억하지 않고 문서에 적어 두고 매 회차 그 문서를 보며 쓴 뒤 문서를 갱신한다. 자동화가 흉내 낼 것은 문장력이 아니라 이 문서 규율이라고 봤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 노트를 네 층으로 나눴다. 0층은 기획 — 로그라인, 결말, 설정집, 아크표를 작품당 한 번 만들고 내가 승인하면 잠근다. 잠근 뒤에는 추가만 허용하고 변경은 금지다. 1층은 아크 트리트먼트 — 열 화쯤 되는 아크에 들어갈 때 회차 카드를 한 번에 뽑는다. 카드마다 핵심 사건, 끝 훅, 절단 유형, 심을 떡밥과 회수할 떡밥이 적힌다. 2층이 매일 1화 루프다. 이전 본문 전체를 넣지 않고 설정집 압축본, 전체 요약, 직전 세 화 요약, 직전 화 마지막 부분, 이번 화 등장 인물의 상태표만 조립해서 쓰고, 쓴 뒤에는 화 요약·인물 상태·떡밥 장부를 갱신한다. 3층은 아크가 끝날 때의 점검 — 모순 스캔과 떡밥 지연 경고를 내고, 발행본은 고치지 않는다. 작가들도 그렇게 한다.
『무명비』는 기획에 제일 오래 걸렸다
첫 작품을 신무협 미스터리로 잡았다. 이름 없는 비석과 스물세 개의 이름을 따라 물의 도시로 가는 이야기다. 미스터리라서 복선과 정답이 촘촘해야 했고, 그래서 1화를 쓰기 전에 결말, 배후 구조, 인물 스무 명의 관계망, 복선 장부, 거짓 단서 목록, 300화 대구조, 회차별 시놉시스까지 설계 문서로 먼저 쌓았다. 1화 집필에 들어간 건 그 다음이었다.
집필은 두 AI가 나눠 맡는다. 초고를 쓰는 작가와, 설계 문서를 쥐고 검수·축약·정사(正史) 대조를 하는 PD다. 누가 작가를 할지는 1화를 두 모델에게 각각 써 보게 해서 정했다. 분량이 폭주하는 버릇이 있는 쪽이 작가가 됐고, 그 폭주를 PD가 사건 예산으로 눌러 준다. 나는 PD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다. 습격자가 몇 명이고 누가 살아남는지, 1화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명단에 어떤 성씨까지 읽히게 할지 같은 결정은 내가 했다. 이런 결정이 쌓여 “정사"가 되고, 이후 모든 화는 정사와 어긋나면 안 된다.
공개한 다음 날 다시 썼다
8월 17일에 1화부터 23화까지 한꺼번에 공개하고, 이후 하루 한 화씩 올라가게 했다. 회차 하단에는 댓글도 달았다.
그리고 내가 통독했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건 무협이 아니라 추리소설 같다"였다. 단서를 정리하는 장면이 많고 강호의 결 — 문파, 객잔, 무인의 위계, 힘의 논리 — 이 약했다. 다음 날인 18일, 11화부터 23화까지를 무협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고 다시 써서 재배포했다. 물길을 쥔 세력, 주인공의 첫 굴욕, 전투 장면, 은혜와 원한으로 묶이는 인연,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 같은 것을 넣었다. 단, 미스터리의 정답과 공정한 추리 구조는 건드리지 않았다. 같은 날 비축돼 있던 24~30화도 같은 톤으로 손질해서 전부 공개했다. 19일에는 약하다고 판정된 여섯 화를 한 번 더 고쳐 올렸다.
자동 발행이 돌아가고 있어도 품질은 자동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공개한 뒤 사람이 읽고, 장르 방향을 바꾸고, 이미 나간 회차를 다시 쓰는 일이 공개 사흘 안에 두 번 있었다.
분량과 품질의 규칙
재집필을 겪으며 규칙 몇 개가 생겼다. 첫째, 검수의 첫 질문은 길이가 아니라 재미다. 글이 많은 건 문제가 아니고 재미없는 게 문제라고 적어 두었다. 그래서 본문을 고칠 때 줄이는 것을 품질 향상으로 보지 않는다. 수정본은 원문의 ±10% 안에서 유지하고, 20% 넘게 줄이는 건 금지, 4,000자 아래로 내려가면 경고로 잡는다. 보강할 때는 행동, 선택, 대화, 인과 순으로 채우고, 냄새·바람·숨결 같은 감각 묘사를 반복해서 분량을 채우는 건 금지다. 둘째, 매 화는 작가 초고 → PD 검수 → 독립 검수 → 피드백 반영 → 발행 순서를 밟는다. 독립 검수는 “이 글을 쓴 사람이 아니다, 약점 위주로 줄을 인용해 짚어라"라는 지시를 받은 별도 검수관 역할이다. 자기 글을 편드는 걸 막으려는 장치다. 셋째, 검수 기준은 고정 문서로 둔다. 장르 우선순위(신무협이 먼저, 미스터리는 뒤), 주인공 제한 시점, 주인공이 무기를 들지 않는다는 설정, 공정 추리, 아직 밝히면 안 되는 정답 목록, 분량. 같은 잣대로 매 화를 잰다.
배운 것
장편을 AI에게 맡길 때 중요한 건 문장보다 문서였다. 결말을 먼저 정하고, 떡밥 장부를 만들고, 설정집을 잠그는 일이 없으면 50화를 못 버틴다는 작가들의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발행 버튼이 자동이라고 해서 내가 빠질 수는 없었다. 방향을 읽어 내는 일, 정사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 몫이다. 독자 피드백도 댓글에서 자동으로 반영되게 하지 않고, 정리된 리포트를 보고 내가 반영·무시를 정한 뒤 다음 아크에만 넣기로 했다.
다음은 31화 이후를 같은 루프로 이어 가는 일이다. 연재는 /novel/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글은 제 여행 기록과 작업 로그를 바탕으로 초안을 AI와 함께 정리하고, 직접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