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알함브라의 사자 중정, 그리고 스페인 광장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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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열기가 가장 높을 때 알함브라에 들어갔다. 성벽 위로 올라서자 맞은편 언덕이 통째로 보였다. 흰 집들이 비탈을 따라 층층이 앉아 있고, 그 사이사이에 사이프러스가 검은 기둥처럼 꽂혀 있었다. 가운데쯤에는 종탑이 달린 낡은 성당이 하나 서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조각뿐이라 그늘이 거의 없었다.

성벽 위는 오래된 돌계단이 이어졌다. 계단 폭이 제각각이라 발을 옮길 때마다 보폭을 새로 재야 했다. 난간 대신 낮은 돌담이 있었고, 그 너머로 아까 본 언덕이 계속 따라왔다. 같은 풍경을 몇 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르겠다.

사자의 중정
사자의 중정에 들어섰다. 사방이 가느다란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둥은 세어보려다 말았고, 위쪽 벽면은 촘촘한 무늬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둥근 수반이 있고, 그 아래를 열두 마리 사자 석상이 등으로 받치고 있었다. 사자들은 하나같이 바깥을 향해 앉아 있었다.
바닥은 흰 대리석이었다. 햇빛이 정면으로 떨어져서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한 장 남겨야 했다. 팔을 벌리고 섰다.

나무 그늘의 안뜰
중정을 지나 안쪽 뜰로 넘어갔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거의 다 가려서 공기가 서늘했다. 낮게 다듬은 회양목이 길을 네모나게 갈라놓았고, 가장자리에는 붉은 꽃이 줄지어 피어 있었다.
가운데에 이단 분수가 있었다. 위 수반에서 넘친 물이 아래 원형 수조로 떨어지며 계속 소리를 냈다. 회랑 아치 밑 그늘에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나도 한참 앉아 있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
궁을 나와 시내로 내려갔다. 자갈을 촘촘히 박은 포장길이 완만하게 아래로 이어졌다. 왼쪽에는 노란 벽에 검은 철제 등이 달린 건물이 길게 서 있었고, 오른쪽 담장 너머로는 오렌지나무 가지가 넘어와 있었다. 길 끝에는 뾰족한 첨탑 두 개가 솟아 있었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다들 느렸다.

저녁에는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봤다. 낮에 본 것들과는 다른 종류의 밝기였다. 하루에 두 번의 빛을 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