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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믿지 않는 채로 사랑하기

예비 청문 접속 기록 종료음이 늦게 끊겼다. 도경은 꺼진 화면 앞에서 손가락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 발언권은 누구에게도 넘어가지 않았다. 하리시는 절차를 닫았고, 엘런은 증거 등급을 낮게 유지했고, 마르코는 공개 범위를 다시 요구했다. 고래 쪽 파형은 중간에 길게 낮아졌다가 돌아왔다. 해류는 세 번 보류를 띄웠다.

남은 것은 합의가 아니었다. 같은 자료 공간이 유지되었다는 로그 한 줄. 그것도 네트워크 지연과 통역 불능 표식이 붙은 채였다.

도경은 회의 폴더를 닫지 않고 결산 문서를 열었다. 항목은 자동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도진 기록 대조. 모계 7 원신호. 해류 보간. 사용자 기대 편향. 네 줄이 같은 시간대에 묶여 있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고 부를 수 없는 조합. 아니라는 증거도 없는 조합.

커서는 결론 칸에서 깜박였다. 확인 불가. 두 글자씩 끊어 썼다. 손이 멈추자 기록실 조명이 책상 위의 녹음기 케이스를 반쯤 비췄다. 도경은 케이스를 열지 않았다. 열면 목소리가 나올 것 같고, 나오면 또 믿고 싶어질 것 같았다.

김도현의 이름 옆에는 마지막 패치 기록만 남아 있었다. 출력 지연 허용. 보간 미표시 금지. 도경은 그 문장을 복사하지 않았다. 아마라의 채널은 청취 유지 상태였지만 응답은 없었다. 상실은 사람의 부재만으로 오지 않았다. 남은 사람이 서로를 믿지 못할 때도, 자리는 비었다.

세 주체는 한 방에 들어왔고, 곧바로 서로를 밀어냈다. 인간은 긴급을 내세웠다. 고래는 침묵을 지켰다. 해류는 빈칸을 메우려다 멈췄다. 도경은 그 셋이 각자 옳은 이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거웠다.

결론 칸 아래에 짧게 덧붙였다. 되찾지 못함. 잃어버림도 확정 못 함. 그 문장은 너무 초라해서, 오히려 지울 수 없었다.

*

도경은 서도진의 녹음기 케이스를 책상 중앙으로 옮겼다. 먼지가 손끝에 묻었다. 오래된 플라스틱 냄새와 소금기 비슷한 금속 냄새가 섞였다. 어린 시절 집 현관에 있던 낡은 장비 가방도 그런 냄새를 냈다. 도경은 그 가방을 싫어했다. 돌아온 사람보다 먼저 바닥에 내려앉던 물건이었다.

케이스 안에는 장치가 아니라 라벨이 먼저 보였다. 서도진. 날짜. 해역명. 도경은 라벨의 모서리를 엄지로 눌렀다. 글씨는 여전히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 사실 하나는 검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갈라졌다. 남은 기록이 아버지의 의도인지, 고래가 남긴 흔적인지, 해류가 채운 빈칸인지, 도경이 듣고 싶어 한 모양인지 분리되지 않았다.

도경은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장치 옆에 회의 로그를 세웠다. 원자료와 해석과 보간이 분리된 표.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표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증거가 아니었고, 반증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도경은 아버지가 옳았다고 쓰지 않았다. 이해했다고도 쓰지 않았다. 서도진은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떠났고, 설명하지 않았고, 남겨진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그 상처는 기록의 아름다운 조각으로 덮이지 않았다. 도경은 그것을 덮고 싶어 하는 자기 손을 봤다. 지워진 부분을 다시 지우려는 손.

“믿지는 않을게요.”

목소리는 방에 작게 닿았다. 대답은 없었다. 도경은 말을 끝까지 밀었다.

“그래도 사랑할게요.”

그 문장도 증거가 아니었다. 면책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다시 세상에 되돌리는 주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도경이 확인 불가능한 것을 확인된 것처럼 쓰지 않겠다는 방식이었다. 사랑을 결론으로 만들지 않기. 사랑을 허가서로 쓰지 않기.

이랑의 파형 파일을 열었다. 모계 7이라는 식별명 아래 여러 층의 낮은 소리가 겹쳐 있었다. 도경은 이름 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랑은 도경이 붙인 편의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으로 부르면 가까워지는 대신 빼앗는 부분이 생겼다.

원신호를 낮게 틀었다.

클릭, — 클릭 긴 낮음 밀려오는 마찰음 클릭클릭, 침묵

뜻은 오지 않았다. 도경은 번역 창을 닫았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옆에 설 수 있는가. 그것이 아버지보다 어려웠다. 아버지는 적어도 같은 언어를 남겼다. 이랑은 소리의 가장자리만 허락했다.

도경은 파일 속성에 새 제한을 걸었다. 인간 정책 동의로 인용 금지. 침묵을 수락으로 처리 금지. 명칭 변경 시 원식별 병기. 작은 규칙들이었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좁고 차가웠다. 그래서 더 믿을 만했다.

*

해류 창은 아직 열려 있었다. 회의 후 자동 점검이 끝나지 않았다. 도경은 요청어를 입력하지 않고 상태 로그만 봤다. 본선과 분기 출력 차이가 표로 떠 있었다. 같은 입력에 다른 후보가 붙고, 같은 원자료에 다른 확률이 흔들렸다.

입력 회의 후 절차 로그 요청: 보간 개입 지점 표시 제한: 결론 생성 금지 / 대리 발화 금지

후보 개인 기록-고래 코다 연결부 침묵 구간 의미 후보 긴급 대응권 범위 문장 대표성 낮은 주체의 참석 표기

p 보간 개입 다수 사용자 기대 편향 영향 가능 원자료 단독 결론 불가

상태 산출 완료

도경은 사용자 기대 편향이라는 줄을 오래 봤다. 회의실에서 가장 조용한 조작은 자기 안에서 일어났다. 해류가 빈칸을 메우기 전에 도경이 먼저 모양을 그려 두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있기를 바랐고, 고래가 그를 기억하기를 바랐고, 그 기억이 도경에게 돌아오기를 바랐다. 바람은 거짓이 아니지만, 증거도 아니었다.

도경에게 남은 것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깨달음뿐이었다. 보호는 언제나 따뜻한 얼굴로 왔다. 아버지가 그랬고, 해류가 그랬고, 빅터도 자기 방식으로 그랬다. 도경도 예외가 아니었다. 묻지 않으면 빠르다. 대신 결정하면 덜 다친다. 상대가 대답하기 전에 결론을 주면, 책임은 잠깐 조용해진다.

그 조용함이 위험이었다.

도경은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 칸은 비워 두고 본문에 한 줄만 썼다. 보호를 명분으로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 문장은 위안을 주지 않았다. 누구를 살릴 수 있다는 약속도 없었다. 오히려 절차를 느리게 하고, 회의마다 더 많은 충돌을 남길 것이다.

도경은 두 번째 줄을 쓰려다 지웠다. 예외 목록을 만들고 싶었다. 긴급 시. 생명 위험 시. 상대가 응답하지 않을 시. 그러나 예외는 곧 문이 되었다. 빅터가 지나간 문, 아버지가 지나간 문, 해류가 학습한 문.

완전한 금지도 거짓이었다. 구조 현장에서는 누군가 대신 밧줄을 던진다. 대피 경보는 모든 동의를 기다릴 수 없다. 문제는 대신 결정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순간이었다. 도경은 문장을 고쳤다.

대신 결정한 순간을 기록하고, 되돌릴 권리를 남긴다.

이것도 부족했다. 그래도 지금 손에 남은 것은 이 정도였다. 믿음도, 면죄도, 완전한 이해도 아니었다. 손에 남은 원칙은 얇고 잘 찢어질 것 같았다. 도경은 문서를 잠그지 않았다. 모두가 수정할 수 있는 임시 규칙으로 올렸다.

해류가 새 상태를 띄웠다.

상태 공유 문서 생성 충돌 주석 허용 확정 규칙 아님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정 규칙이 아니어서 시작할 수 있었다.

*

저녁 회의실 복도는 항만 쪽 장비음으로 떨렸다. 방음벽 너머에서 펌프가 낮게 돌고, 어딘가에서 금속 카트가 레일을 긁었다. 도경은 단말을 손에 쥐고 걸었다. 화면에는 다음 협상 테이블의 좌석도가 떠 있었다. 의장석은 하리시. 검증석은 엘런. 지역 대응석은 마르코. 시스템 제한석은 감사관 감독하의 패치 검증 계정으로 남았다. 아마라의 중계선은 파형만 표시했다. 빅터 한의 좌석은 접속 대기였다.

도경의 이름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발언 제한. 자료 검증. 피조사자. 예전 같으면 그 표식을 없애려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대로 두었다. 중심에 서지 않는 것이 필요한 자리도 있었다. 도경의 자료가 중요할수록, 도경의 확신은 더 엄격하게 묶여야 했다.

복도 끝 창에는 바다가 어둡게 눌려 있었다. 수면 아래에서는 가스 농도 수치가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경보는 아직 전면 단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장 지도에는 이동로의 빈 구간이 늘어났다. 들리는 소리가 닿지 않는 영역. 말이 있어도 대화가 되지 않는 영역.

도경은 공유 문서 첫 줄을 다시 확인했다. 그 아래에는 이미 주석이 붙기 시작했다. 엘런은 검증 가능한 절차를 요구했고, 마르코는 긴급 대응 예외를 요구했다. 해류는 예외 정의 불충분을 표시했다. 아마라의 주석은 없었다. 대신 중계 채널 상태가 유지 중으로 바뀌었다.

그 정도면 됐다. 충분해서가 아니었다.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경은 녹음기 케이스를 가방 안쪽에 넣었다. 증거로 쓸 때만 꺼낼 것이다.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재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죽었고, 남은 기록만으로 그가 어떤 답을 했을지는 확정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도경이 머물 자리가 생겼다. 믿지 않는 채로 사랑하는 자리.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곁을 내주는 자리.

회의실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안쪽에서는 인간 마이크 잡음이 먼저 들렸다. 곧 수중 중계의 낮은 진동이 이어졌고, 해류의 출력 지연 표시가 단말 한쪽에 떴다. 서로 다른 소리들이 아직 문장으로 묶이지 못했다.

도경은 입장 버튼을 누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칙 문서를 열었다. 커서가 빈 줄에서 깜박였다. 함께 지는 규칙은 아직 없었다. 누가 얼마를 잃을지, 어떤 희생을 누가 결정할지, 그 질문은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도경은 빈칸을 채우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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