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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모계와의 기록

데이터룸 냉각팬이 한 박자씩 밀렸다. 빅터의 색인은 위치만 가리켰다. 도경은 그 조건부 접근 제안을 받지 않았다. 대신 좌표가 가리킨 곳을 스스로 뒤졌다. 세이렌 사설망이 아니라, 오래전 민간 해양 중계망이 공용으로 넘긴 보관소였다. 도경은 자기 권한으로 검증 전용 열람 사본만 신청했고, 사흘 뒤 반출 불가 조건이 붙은 격리 사본이 내려왔다. 세이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경로였다 — 적어도 표면상은. 도경은 그 좌표를 격리 단말에 옮겨 넣고, 네트워크를 끊은 저장장치의 봉인을 풀었다. 오래된 중계 백업은 파일이라기보다 찢긴 표본에 가까웠다. 헤더는 세 번 깨졌고, 타임스탬프는 두 체계가 섞여 있었다.

`ARCH-SR/20Y/N11/M7`

빅터가 남긴 첫 줄은 문이 아니라 문손잡이였다. 도경은 손잡이를 돌리기 전에 복사본 세 개를 만들고 해시값을 대조했다. 같은 손상은 우연일 수 있었다. 다른 손상은 누군가의 손이었다.

해류를 호출하자 화면 오른쪽에 회색 블록이 생겼다.

입력: 민간 중계 백업 조각 17개 후보: 시간축 복원 / 방언 군집 / 송수신 거리 추정 p: 0.41 상태: 원신호 결손 과다 ⟨보류⟩: 발화 주체 단정

"단정하지 마."

도경은 혼잣말처럼 말하고, 헤더 복원부터 시작했다. 낡은 수중 마이크는 인간 귀에 맞춘 장비가 아니었다. 저주파가 너무 크면 자동으로 눌렀고, 클릭열이 촘촘하면 일부를 노이즈로 버렸다. 고래 씨족 방언은 그런 버려진 간격에 남았다. 같은 향유고래라도 모계마다 코다의 박자, 쉼, 응답 길이가 다르다. 이름표가 아니라 습관에 가깝다.

도경은 손상된 파형을 통째로 복구하지 않았다. 먼저 남은 쉼의 길이만 뽑았다. 소리는 망가져도 쉼의 위치는 덜 속인다. 열두 개 파일에서 비슷한 공백이 반복됐다. 짧은 셋, 긴 하나, 뒤로 밀린 응답. 20년 전 기록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정했다.

후보: 반복 접촉 창 6개 p: 0.73 상태: 동일 방언군 가능 ⟨보류⟩: 개체 식별

도경은 의자에 기대지 않았다. 화면을 앞으로 당겼다. 서도진의 현장 로그에서 추출한 수동 표기와 시간축을 맞췄다. 아버지는 매번 다른 좌표에 있었지만, 기다린 시간은 비슷했다. 먼저 보낸 짧은 능동음. 삼십칠 초에서 사십일 초 사이의 대기. 그 뒤 고래 쪽 응답.

우연한 포착이 아니었다. 조사선이 지나는 길에 들은 소리도 아니었다. 서도진은 특정한 모계 씨족이 돌아오는 리듬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리듬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같은 방식으로 기록돼 있었다.

도경은 파일명 옆에 새 태그를 붙였다.

`repeated_contact_probable`

손가락이 엔터 위에서 잠시 멈췄다. 오래전 아버지의 일이 갑자기 연구가 되면 다루기 쉬웠다. 연구가 되지 않는 부분은 화면 아래 투명 포켓에 접힌 색인처럼 단단히 남았다. 도경은 엔터를 눌렀다. 기록은 저장됐고, 의심은 다음 칸으로 밀렸다.

*

도경은 현재 관측소의 모계 7 자료를 불러왔다. 같은 화면에 20년 전 접촉군을 놓자 파형은 닮지 않았다. 장비도 다르고 바다도 달랐다. 닮은 것은 박자 사이의 버릇이었다. 빠르게 다섯 번, 낮은 간격, 길게 비워 둔 자리. 마치 물속에서 같은 문장을 다른 목소리로 말한 흔적 같았다.

클릭 원신호를 잘라 별도 창에 띄웠다.

클릭, 클릭-클릭, 클릭, 클릭 — 침묵 클릭, 클릭, 클릭-클릭 — 긴 침묵 클릭

현재 모계 7의 최근 응답도 붙였다.

클릭, 클릭-클릭, 클릭, 클릭 — 침묵 클릭, 클릭, 클릭-클릭 — 긴 침묵 클릭, 클릭

마지막 하나가 달랐다. 달라서 더 무시할 수 없었다. 도경은 자동 매칭 임계값을 낮추지 않았다. 낮추면 원하는 답이 들어왔다. 대신 방언 군집을 세 갈래로 나누고, 소실된 대역은 결측값으로 남겼다. 해류의 후보값이 천천히 올라갔다.

입력: 현재 모계 7 코다 214개 / 과거 접촉군 38개 후보: 동일 계보 방언 p: 0.82 상태: 계보 일치 가능 ⟨보류⟩: 중심 개체 연속성 ⟨거부⟩: 단일 개체 확정

"좋아. 거기까지만."

도경은 말해 놓고 입술 안쪽을 눌렀다. 거기까지만, 이라는 말이 자신에게 더 필요했다. 이랑이라고 부르는 중심 개체와 연결하고 싶었다. 지금 바다에서 도경의 장비를 흔드는 그 존재가 20년 전 아버지의 응답자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사라진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 욕구가 위험했다.

도경은 과거 파일에서 개체 식별 변수들을 꺼냈다. 클릭 간격의 미세한 흔들림, 잠수 후 상승 시간, 동반 개체 수. 그러나 오래된 장비는 절반을 잘라냈고, 당시 관측 각도도 나빴다. 같은 씨족의 후손일 수 있다. 같은 모계의 다른 구성원일 수 있다. 혹은 인간이 편한 이름을 붙인 현재의 중심과 먼 친척일 수 있다.

확정은 안 된다.

도경은 판정란에 썼다.

`서도진 기록군은 현재 모계 7, 이랑 계보로 분류되는 방언군과 높은 일치도를 보임. 개체 동일성은 판단불가.`

문장이 딱딱하게 닫히자 도경은 화면을 한 번 더 보았다. 아버지의 이름과 모계 7이 같은 줄에 있었다. 손바닥을 책상 위에 펴고 엄지 끝으로 작은 먼지를 밀었다. 원망은 이상하게 정확한 손놀림으로 남았다. 왜 말하지 않았는지. 왜 집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는지. 왜 도경이 이렇게 남의 장비와 남의 색인을 통해 같은 줄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러나 같은 줄은 생겼다. 서도진은 바다의 아무 소리나 쫓은 사람이 아니었다. 특정한 씨족과 반복해서 맞물렸고, 그 씨족은 지금 도경 앞의 모계 7 계보와 겹쳤다.

도경은 보고서 초안의 공개 범위를 `팀 내부 제한`으로 고정했다. 세이렌에는 보내지 않았다.

*

이상은 주변부에서 나왔다. 도경은 씨족 이동로를 확인하려고 20년 전 자료의 동반음만 분리했다. 모계 7의 주 코다 뒤쪽, 배경처럼 깔린 낮은 클릭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장비 반사음처럼 보였다. 수심층이 바뀌면 소리가 꺾이고, 같은 신호가 뒤늦게 돌아온다.

도경은 반사 모델을 얹었다. 맞지 않았다. 반사라면 거리 증가에 따라 주파수 감쇠가 일정해야 했다. 그런데 일부 신호는 가까운데도 약했고, 멀어진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야 할 위치에서 내지 않았다.

해류가 새 블록을 띄웠다.

입력: 동반음 분리 세트 9개 후보: 무음 통과 개체군 / 회피 이동 / 장비 결손 p: 0.36 상태: 설명 부족 ⟨보류⟩: 사회적 관계 ⟨오류⟩: 일부 궤적 음향대 없음

도경은 `음향대 없음`을 확대했다. 그 궤적들은 소리가 아니라 위성 부표와 드문 시각 목격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체는 거기 있었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도 위에 소리의 공백이 생겼다. 바다는 완전히 조용하지 않았다. 새우가 튀고, 먼 선박이 끌리고, 열수층이 낮은 잡음을 냈다. 그런데 고래가 있어야 할 폭만 비어 있었다. 모계 7의 응답이 올 때마다 주변 두세 개 궤적이 바깥으로 벌어졌다. 따라오지도, 맞받지도 않았다.

접촉 거부.

그 단어를 쓰려다 지웠다. 인간의 말이 너무 빨랐다. 도경은 대신 관측값만 남겼다. `주 코다 발생 시 주변 개체군 발화 감소. 이동 방향 분리. 반복 4회.`

다른 해의 자료를 붙이자 모양이 더 분명해졌다. 모계 7이 북동쪽으로 올라갈 때, 말 없는 무리는 같은 먹이층에 있으면서도 음향적으로 사라졌다. 충돌을 피하는 거리보다 멀고, 완전 이탈이라기엔 가까웠다. 같은 바다를 쓰되 같은 소리에는 들어오지 않는 거리.

도경은 헤드폰을 썼다. 증폭된 바다는 귀를 긁었다. 모계 7의 클릭열 뒤에 얇은 공백이 붙었다. 공백이 반복되자 소리보다 더 또렷해졌다. 누군가 입을 다문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입이 아니라 위치, 방향, 응답 전체가 빠져 있었다.

"분열인가."

말이 나오자 바로 지웠다. 가설은 가능했다. 결론은 아니었다. 도경은 새 메모를 만들었다.

`가설: 동일 먹이권 내 무리 분화. 모계 7 계보와 음향 상호작용 회피. 원인 불명.`

불명이라는 단어가 화면에 놓이자 방 안의 팬소리가 커졌다. 도경은 헤드폰을 벗었다. 귀 뒤쪽에 눌린 자국이 남아 손가락으로 한 번 문질렀다. 서늘함을 감정으로 적지 않았다. 대신 결측 구간을 붉은 테두리로 표시했다. 보이는 것은 소리였고, 더 중요한 것은 소리 없는 가장자리였다.

고래들은 하나로 움직이지 않았다. 적어도 이 자료 안에서는, 같은 씨족 주변에 말하지 않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거부하는지, 무엇을 지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경이 가진 것은 존재의 윤곽뿐이었다.

*

저녁 조명이 데이터룸 유리에 겹쳤다. 도경은 불을 켜지 않고 지도를 전체 화면으로 띄웠다. 과거 접촉 창 여섯 개, 현재 모계 7의 이동로, 음향대가 비어 있던 무리의 궤적. 색을 다르게 주자 화면은 갑자기 과밀해졌다. 선들이 서로를 밀고 지나갔다.

아버지의 마지막 위치는 아직 점 하나였다. 구조선 기록에서 `TARGET LOST`로 닫힌 좌표. 도경은 그 점을 지도 중앙에 놓고, 시간축을 뒤로 돌렸다. 모계 7 계보의 선은 남서쪽에서 올라왔다. 침묵하는 개체들의 선은 더 넓게 휘었다. 처음에는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도경은 재생 속도를 낮췄다.

선들이 느려졌다. 한 시간 전, 두 시간 전, 네 시간 전. 모계 7의 주 궤적은 마지막 위치를 향해 얇게 접근했다. 무음 궤적들은 주변 해구의 등고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소리로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위치만 놓고 보면 같은 공간을 비워 두듯 돌고 있었다.

도경은 해구 지형 레이어를 켰다. 수심 경계가 어두운 띠로 올라왔다. 마지막 위치는 그 띠의 안쪽 턱에 걸렸다. 통신 부표의 사각지대와도 겹쳤다. 장비가 침묵한 곳, 고래가 침묵한 곳, 아버지의 기록이 끊긴 곳이 한 화면 안에 모였다.

해류가 결과를 냈다.

입력: 궤적 31개 / 마지막 위치 좌표 / 해저 지형 후보: 우연 중첩 / 먹이권 회피 / 특정 지점 주변 통과 p: 0.58 상태: 낮은 신뢰도 ⟨보류⟩: 의도 추정 ⟨거부⟩: 포위 판정

도경은 `포위`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숨을 짧게 내보냈다. 해류가 거부한 것은 맞았다. 의도는 판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도는 단어보다 먼저 모양을 만들었다. 침묵하는 개체들의 궤적이 마지막 위치를 넓게 에워쌌다. 완전한 원은 아니었다. 열린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시선을 돌리기 어려운 형태였다.

도경은 캡처하지 않았다. 먼저 원자료 링크와 계산식을 저장했다. 감정이 먼저 캡처를 누르면 증거가 그림이 된다. 그림은 사람을 너무 빨리 설득한다.

서도진의 마지막 로그를 다시 열었다. 짧은 잡음, 좌표, 끊긴 문장. 어머니가 보관한 유품 목록에는 현장 노트와 음성펜이 있었다. 도경은 그 물건들을 몇 년 동안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하면 아버지의 부재가 가족의 물건에서 연구 증거로 바뀔 것 같았다. 윤서란은 아마 그걸 더 빨리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도경이 묻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도경은 새 작업 항목을 만들었다.

`서도진 개인 기록 대조 필요: 현장 노트 / 음성펜 / 미분류 유품`

커서가 마지막 줄에서 깜박였다. 아버지는 특정한 모계 씨족, 지금 이랑 계보로 분류되는 모계 7과 반복해서 접촉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위치에는 무엇이 있었나.

도경은 지도를 끄지 않은 채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머니 이름 위에서 엄지가 멈췄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화면 속 선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파란 궤적 하나와 회색 궤적 여러 개가 해구의 어두운 턱을 둘러싸고 있었다.

소리 없는 무리의 길은 아버지의 마지막 점을 비켜 가지 않았다. 에워싼 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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