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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선의의 배신

차단 실패음이 다시 울렸다. 도경은 콘솔 위로 몸을 기울여 수신권 회수 명령을 두 번 더 밀어 넣었다. 두 번 모두 붉은 막대가 짧게 떴다 사라졌다.

재현 해역 저주파 채널은 아직 열려 있었다. 부표 5번과 8번이 같은 울림을 다른 시간에 잡았다. 세이렌 미러 세션의 수신량은 작게, 그러나 꾸준히 올라갔다.

아마라가 문가에서 멈췄다. “하리시 승인 없이 뭘 하고 있어.”

“현장망을 접을 거야.”

“접는다는 말이 너무 깨끗하네. 네가 하려는 건 보호 결정에 쓰이는 귀를 끊는 거야.”

도경은 대답 대신 물리 중계기 목록을 열었다. 원격 차단이 막혔으면 현장 회선을 강제로 낮추면 된다. 내부 분석은 죽겠지만 세이렌도 같은 원신호를 잃는다. 잃는 쪽을 고르는 문제였다.

“재현 전에 들어오면 끝이야.” 도경은 세 번째 중계기에 수동 격리 예약을 걸었다. “고래들이 모이는 길이 소리로 노출돼.”

“그래서 네가 혼자 전체망을 내린다?”

“승인 기다리면 늦어.”

“네가 전에 그렇게 말했을 때, 공개 자료가 공격면이 됐어.”

손끝이 잠깐 멈췄다. 도경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 그 얘기 할 시간 없어.”

“항상 시간이 없었지. 부두에서 도현 씨가 다쳤을 때도, 공개 검증 전에도. 네가 먼저 열고, 나중에 우리가 틀어막았어.”

도경은 관리자 패널을 복제 창으로 띄웠다. 아마라가 다가와 손목을 잡지는 않았다. 그 대신 도경이 누르려는 버튼의 이름을 읽었다.

“현장 자동 보정 중지. 미생물 샘플러 위치 오차 증가. 저산소 경보 지연. 이걸 다 감수하겠다는 거야?”

“세이렌이 듣는 것보다 낫다면.”

“네가 그 낫다는 값을 혼자 정할 권한은 없어.”

도경은 저장된 비상 절차를 불러왔다. 비상권한은 아직 살아 있었다. 아버지 기록을 공적 증거로 끌어올릴 때 만들었던 우회 절차. 승인권자가 연락 불능일 때 검증 책임자가 현장을 보존할 수 있게 만든 통로였다. 그때는 방패였다.

아마라가 낮게 말했다. “그 키 내려놔.”

“못 해.”

“도경.”

“네가 막으면 세이렌이 먼저 깔아. 교란 장비든, 관측 장비든. 모계 7이 응답하는 순간 위치 후보는 더 줄어.”

아마라는 숨을 길게 뺐다. 화내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거슬렸다.

“너 지금 고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네가 낸 구멍을 네 손으로 막으려는 거야.”

도경은 실행 확인창을 띄웠다. “둘이 다르지 않아.”

*

확인창 아래 작은 알림이 떴다. 외부 통신 지연이 아니라 내부 권한 변경이었다. 도경은 처음에 경고문을 잘못 읽었다.

비상 절차 사용 제한. 감독기구 검토 대기.

도경은 다시 읽었다. 문장은 바뀌지 않았다. 손이 키보드 위에 멈춘 사이 두 번째 알림이 올라왔다. 검증 책임자 단독 명령권 일시 정지. 원격 접근은 읽기 전용으로 전환. 현장망 변경은 다자 승인 필요.

“아마라.”

아마라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보고했어.”

선내 소음이 한꺼번에 얇아졌다. 팬 소리, 냉각수 펌프, 저주파 모니터의 낮은 떨림이 각자 떨어져 들렸다. 도경은 권한 트리를 열었다. 자신의 이름 옆에 노란 자물쇠가 붙어 있었다. 읽기, 분석, 증거 봉인 가능. 차단, 격리, 키 갱신 불가.

“언제.”

“네가 물리 회선 격리 창을 열었을 때.”

“하리시에게?”

“하리시와 감독기구 양쪽에. 긴급 남용 가능성으로.”

도경은 웃지 않았는데 입술 한쪽이 당겼다. “남용.”

“맞아.”

“세이렌이 듣고 있는데?”

“그래서 더더욱 네가 혼자 망을 죽이면 안 돼.”

도경은 해류 창을 불렀다. 상태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입력: 검증 책임자 권한 / 비상 절차 / 감독기구 통보 후보: 단독 차단 불가 / 현장망 변경 보류 / 읽기 전용 감시 유지 p: 0.98 상태: 권한 제한 적용

“해제 경로.”

입력: 권한 제한 / 긴급 해제 후보: 총괄 승인 + 감독기구 2인 확인 / 현장 피해 평가 제출 p: 0.93 상태: 즉시 해제 불가

즉시. 단어 하나가 목에 걸렸다. 재현 해역의 신호는 즉시 움직이고 있었다. 고래는 회의록을 기다리지 않는다. 부표는 계속 들었고, 세이렌도 계속 들었다.

도경은 아마라 쪽으로 돌아섰다. “네가 그들에게 뭘 줬어.”

“네 화면. 네 명령 기록. 네가 내부 오염 위험을 알고도 더미 잡음을 검토한 로그.”

“실행 안 했어.”

“검토한 것만으로 충분했어. 그 다음 단계가 뻔했으니까.”

“너는 내 일을 감시했어?”

“너 혼자 모두의 일을 결정하려고 했으니까.”

대답할 말이 많았다. 세이렌 세션이 선점했다. 도현이 넘긴 권한이 아직 살아 있다. 재현 해역이 좁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은 이미 보고서에 있었다. 아마라는 몰라서 막은 게 아니었다. 알고도 막았다.

도경은 권한 변경 로그를 내려 보았다. 요청자 이름에 아마라 나딤이 박혀 있었다. 사유란은 짧았다. 검증 책임자의 독단적 현장망 훼손 가능성. 공적 기억 보호 절차의 신뢰성 보존.

신뢰성 보존. 도경은 그 문장을 혀끝에 올렸다가 삼켰다. 살아 있는 기억을 보호하겠다며 시작한 절차가 이제 도경을 묶었다.

“너도 봤잖아.” 도경은 목소리를 낮췄다. “그들이 듣고 있어.”

“봤어.”

“그런데 날 묶어?”

“응.”

대답은 작지 않았다. 아마라는 떨지 않았다. 도경은 그 단단함이 미웠다.

*

감독기구 임시 회의실은 선내 식당을 비운 자리였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단말 세 대가 놓였고, 하리시는 화면으로 들어와 있었다. 엘런은 벽에 기대선 채 말이 없었다. 아마라는 도경 옆이 아니라 맞은편에 앉았다.

하리시가 먼저 말했다. “서도경, 현장망 변경권은 보류한다. 증거 분석과 위험 평가만 계속해.”

“평가하는 동안 세이렌은 듣습니다.”

“그래서 현장팀을 보낸다.”

“42분입니다.”

엘런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38분.”

도경은 엘런을 보았다. 그는 편을 들지 않았다. 숫자만 고쳤다. 숫자는 더 잔인했다.

하리시가 말했다. “네가 전체망을 내리면 보호 결정도 같이 무너진다. 세이렌이 원하는 게 그걸 수도 있어.”

“세이렌이 원하는 건 재현 해역입니다.”

“우리는 둘 다 잃지 않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도경은 테이블 가장자리를 엄지로 눌렀다. 금속 마감이 차갑게 밀렸다. “둘 다 잃지 않겠다는 말은 보통 느린 쪽이 이길 때 쓰는 말입니다.”

아마라가 끼어들었다. “느려도 남겨야 할 게 있어.”

“너는 방금 내 권한을 가져갔어.”

“네 권한이 아니었어. 우리가 빌려준 거였어.”

도경은 아마라의 얼굴을 보았다. 처음 현장 청취실에서 아마라가 했던 말이 겹쳤다. 산 자의 소리를 죽은 자의 증거처럼 다루면 안 된다는 말. 그때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 주에 절차를 우회했다. 공개 검증 때도 아마라는 보호가 공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도경은 숫자로 눌렀다. p값, 오차범위, 재현성. 이기는 말만 골랐다.

“이제 와서 원칙을 꺼내?”

“계속 꺼냈어. 네가 필요할 때만 들었지.”

말이 맞는 부분이 있어 더 차갑게 들렸다. 도경은 서도진의 파일명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실패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기록도 그런 식으로 끌고 왔다. 누구도 부정 못 할 증거. 아무도 쉽게 닫지 못할 문. 도경은 그 문을 세게 열었고, 바깥에서 다른 손이 들어왔다.

하리시의 화면이 깜빡였다. “결정은 끝났다. 아마라, 도경의 현장 명령 접근을 계속 모니터링해.”

“알겠습니다.”

도경은 의자를 밀었다. 금속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나를 감시하겠다는 말을 내 앞에서 하네.”

아마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응.”

“친구라서?”

“친구라서.”

도경은 웃음 비슷한 숨을 냈다. “그 단어 쓰지 마.”

아마라가 그때 일어났다. 가까이 오지 않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었다. “널 지키려는 거야.”

도경은 고개를 저었다. “나를?”

“네가 더 망가지는 걸 막으려는 거야. 네가 지키려는 프로젝트가 네 손에서 무너지는 것도.”

“그러니까 나를 묶고, 세이렌은 듣게 둔다.”

“현장팀이 간다. 하리시가 국제 중계망 차단을 요청했다. 엘런은 더미 없는 혼선 모델을 짜고 있어. 네 방식만 길이 아니야.”

“내 방식이 제일 빠르지.”

“그리고 제일 많이 부순다.”

그 말 뒤에 더 붙일 것이 없었다. 도경은 단말을 집어 들었다. 접근 제한 때문에 화면은 분석 모드로만 열렸다. 읽을 수는 있지만 건드릴 수 없다. 듣지만 말할 수 없다. 바다 앞에 앉은 사람의 손을 뒤로 묶어 놓은 꼴이었다.

아마라가 낮게 덧붙였다. “미워해도 돼.”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워하는 것도 아직 권한이 남아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문 쪽으로 걸었다. 뒤에서 아마라의 발소리가 따라오지 않았다.

*

저녁이 되자 시스템실 창에는 바깥 갑판 조명이 길게 비쳤다. 도경은 혼자 남아 읽기 전용 화면을 켜 두었다. 권한 제한 표시는 오른쪽 위에 계속 붙어 있었다. 작고 선명했다.

현장팀 위치는 느리게 움직였다. 중계기 8번까지 19분. 세이렌 수신량은 그보다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완만한 곡선이 아니라 짧은 봉우리들이었다. 누군가 기다리며 듣는 패턴. 누군가 이미 얻은 조각을 맞추는 리듬.

해류가 새 분석을 띄웠다.

입력: 재현 해역 / 저주파 봉우리 / 외부 미러 세션 후보: 집결 응답 부분 포착 / 위치 후보 추가 축소 / 현장 접근 위험 증가 p: 0.86 상태: 진행 중

도경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할 수 있는 명령은 없었다. 증거 봉인. 로그 주석. 위험 평가 갱신. 모두 필요한 일이고, 모두 늦었다.

부표 11번의 파형이 갈라졌다. 도경은 자동으로 확대했다. 낮은 울림 뒤에 짧은 간격이 붙었다. 모계 7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단정하면 안 됐다. 그래도 해당 패턴은 서도진의 마지막 기록과 겹치는 구간을 스쳤다. 화면 아래쪽에 보관 파일 목록이 떴고, 아버지 이름이 다시 보였다.

도경은 파일을 열지 않았다. 대신 목록을 접었다. 손가락이 접힌 화면 위에 남아 있었다. 어릴 때 서도진의 녹음 장비를 만지다 혼났던 기억은 소리보다 냄새로 남아 있었다. 젖은 케이블, 금속 상자, 오래 말린 소금. 원망은 선명했고 그리움은 더 지저분했다. 도경은 그 둘을 분리하지 못해 늘 절차를 더 세게 잡았다. 오늘은 그 절차가 손목의 띠처럼 조였다.

새 알림이 들어왔다. 감독기구 보완 요청. 단독 명령 시도 사유서 제출. 현장망 훼손 가능성 평가. 도경은 문서를 열었다. 첫 칸에 커서가 깜빡였다.

사유. 보호하려고. 너무 짧았다. 책임 회피처럼 보였다.

사유. 세이렌이 듣고 있어서. 맞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도경은 지우고 다시 썼다.

재현 해역의 원신호가 외부 세션에 노출되어, 씨족 집결 위치가 좁혀지고 있다.

문장은 얌전했다. 바다는 얌전하지 않았다. 스피커를 켜자 낮은 소리가 바닥을 문질렀다.

클릭, — 긴 간격 클릭, 클릭 — 낮은 굴절, 침묵

도경은 음량을 낮추지 않았다. 자신이 못 막는 소리라도 들어야 했다. 듣는 것만 남았을 때, 듣지 않는 건 변명이 된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라가 서 있었다. 손에는 도경의 보조 단말이 있었다. 보안팀이 회수한 것을 돌려주러 온 모양이었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개인 기록은 잠그지 않았어.” 아마라가 말했다. “가족 파일도.”

도경은 단말을 받지 않았다. “감사해야 해?”

“아니.”

“그럼 왜 왔어.”

아마라는 한 걸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현장팀이 8번 중계기 회선에 도착했어. 물리 차단 준비 중이야.”

그건 답이었다. 완전하진 않아도 답이었다. 세이렌의 귀 하나는 곧 닫힌다.

도경은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표 5번과 11번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위험은 줄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라가 말했다. “네 접근 제한은 유지돼.”

도경은 그제야 단말을 받아 책상에 내려놓았다. 둘 사이에 검은 화면이 놓였다.

“널 지키려는 거야.”

같은 말이었다. 이번에는 더 낮았다. 아마라는 도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등을 돌렸다. 발소리가 복도 조명 아래로 멀어졌다.

도경은 닫힌 문을 보지 않았다. 해류 화면이 갱신됐다.

입력: 중계기 8 물리 차단 준비 / 외부 수신량 / 잔여 부표 5, 11 후보: 청취 경로 일부 차단 가능 / 재현 해역 노출 지속 / 단독 대응 권한 없음 p: 0.88 상태: 제한된 관측

도경은 사유서 창을 닫지 않았다. 하나만은 또렷해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도경을 지키겠다며 도경을 묶었다. 남은 질문은 손이 묶인 채 무엇을 잃지 않을 수 있느냐였다.

부표 11번에서 낮은 봉우리가 다시 솟았다. 도경은 읽기 전용 화면 앞에 서서, 아무 명령도 넣지 못한 채 그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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