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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 13/30

약재 처녀

새벽의 수향은 언제나 젖어 있었다.

진소백은 객잔 뒤편의 좁은 처마 밑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밤새 내린 안개가 기와 끝에 매달렸다가,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운하 쪽에서는 아직 장사꾼들의 목소리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노 젓는 소리가 낮게 물살을 긁고, 먼 곳의 닭 우는 소리가 물안개에 눌려 흐릿하게 번졌다.

그는 품속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꺼냈다.

지난 사흘 동안 물어 얻은 이름과 집 모양, 선착장 위치, 밤마다 들은 소문을 되는대로 적어 둔 것이었다. 먹이 번진 자국이 많았다. 비에 젖은 손으로 만진 탓도 있었고, 누구 앞에서는 펼칠 수 없어 허둥지둥 접어 넣은 탓도 있었다.

하 노인.

그 이름 옆에는 줄이 여러 번 그어져 있었다.

문 앞까지 갔으나 들어가지 못한 집. 선화라는 어린 뱃사공이 오가던 곳. 스승 고진명의 이름에 허 영감이 이상하게 반응했던 일. 밤마다 찾아온 죽음들. 다섯 번의 죽음 뒤에도 마을은 아침이면 장사를 했다. 사람들은 물길을 건너고, 생선을 다듬고, 낡은 배 밑을 기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얼굴이 진소백에게는 더 서늘했다.

“오늘은 북쪽 물가부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종이를 접었다.

허봉의 집에 들를까 잠시 망설였다. 아이의 열은 어젯밤 많이 내렸다. 그래도 이른 아침에 한 번 더 맥을 짚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허봉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거의 다 들은 듯했다. 허봉은 가난했고, 겁이 많았고, 자기 아이가 숨을 편히 쉬는 것만으로도 연신 허리를 굽혔다. 진소백이 계속 찾아가면 이웃들의 눈이 붙을 터였다.

곽서의 하수인들이 이미 한 차례 그를 밀쳤다.

어깨에 남은 감각은 사라졌지만, 그 순간의 수치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진소백은 아직도 그 손아귀의 힘을 기억했다. 별다른 무공도, 날카로운 칼도 아니었다. 그저 “물러나라”는 뜻으로 툭 밀어낸 손. 그런데 그는 물러났다.

그 사실이 자꾸 목 안쪽을 긁었다.

진소백은 시장이 깨어나기 전의 물가를 따라 걸었다. 좁은 돌길 양옆으로 낮은 집들이 붙어 있었다. 문틈마다 습기가 배어 있었고, 삭은 나무창에는 물때가 얼룩처럼 묻었다. 어느 집 앞에는 아직 식지 않은 약탕기 냄새가 희미하게 흘렀다. 그는 그 냄새에 걸음을 늦췄다.

쓴 향. 진피와 감초, 오래 끓인 생강. 그 속에 미묘하게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좁은 골목 안쪽에서 여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처음에는 장사꾼인 줄 알았다.

등에는 약재 꾸러미가 든 낡은 등짐을 지고 있었고, 한 손에는 작은 대바구니를 들었다. 바구니 안에는 말린 뿌리와 잎, 종이에 싸인 가루 약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옷은 수향의 여인들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빛이 바랜 푸른 저고리에 흙물이 든 치마, 소매 끝은 여러 번 접어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걸음이 달랐다.

진소백은 그것을 먼저 보았다. 물가 마을 사람들은 대개 발끝이 조심스러웠다. 미끄러운 돌, 삭은 나무다리, 좁은 선착장을 몸으로 익힌 사람들의 걸음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발은 조심스럽되 더없이 가벼웠다. 물기를 머금은 돌 위에서도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여인은 진소백을 힐끗 보았다.

시선이 아주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 짧은 한 번에 진소백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행인의 얼굴을 스쳐 보는 눈이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재고, 확인하고, 감추는 눈이었다.

그가 먼저 입을 열려 했지만, 여인은 이미 그를 지나쳤다.

“잠시만.”

진소백의 말에 여인이 멈췄다. 고개만 반쯤 돌렸다.

“이 근처에 약탕을 끓이는 집이 있소?”

여인은 진소백의 옷차림을 아래위로 훑었다. 낡은 도포, 오래 여행한 신발, 등에 진 낡은 봇짐. 그 시선은 봇짐 끈과 허리춤의 작은 약낭에서 조금 더 머물렀다.

“아픈 집은 많아요.”

목소리는 낮고 맑았다. 그러나 친절하지는 않았다.

“방금 이 골목에서 약 냄새가 났소. 해열에 쓰는 약 같았는데, 냄새가 조금 이상해서.”

“의원이에요?”

“조금 배웠소.”

“조금 배운 사람이 남의 약 냄새를 맡고 이상하다고 해요?”

진소백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인의 말투에는 비웃음이 없었다. 그래서 더 곤란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었다.

“최근 이 근처에서 밤마다 사람이 죽었소. 병인지, 독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인지 알아보는 중이오.”

여인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진소백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놀람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던 말을 다시 들은 사람의 눈에 가까웠다.

“외지인이 그런 걸 왜 알아봐요?”

“그대야말로 약재를 팔러 다니며 집집마다 무엇을 묻고 다니는 듯하던데.”

여인의 손가락이 바구니 손잡이를 살짝 고쳐 쥐었다.

“내가 뭘 물었는지 봤어요?”

“보진 못했소. 하지만 약재 장수라기엔 너무 이른 시간에 빈집 문을 두드리고 다니는군.”

여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골목 밖 물길에서 작은 배가 지나가며 나무판자에 물을 찰박찰박 밀었다. 그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그럼 서로 못 본 걸로 해요.”

여인이 다시 몸을 돌렸다.

진소백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하 노인을 찾고 있소?”

이번에는 여인이 완전히 멈췄다.

그 등짐의 끈이 어깨 위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진소백은 자신이 너무 급히 찔렀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나온 말이었다. 그는 여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하 노인이라니요?”

여인은 천천히 돌아섰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전보다 공기가 차가워졌다. 진소백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허리 쪽으로 내렸다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췄다. 무기를 잡을 생각은 아니었다. 잡을 것이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다.

“모른다면 되었소.”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어요?”

“그대가 모른다 하지 않았소?”

여인의 눈썹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웃음 같기도 했고, 경고 같기도 했다.

“외지인. 여기 물길에 오래 머물 생각이면, 아는 이름을 아무 데서나 꺼내지 않는 게 좋아요.”

“그 충고를 그대가 하는 이유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약을 사지 않으니까요.”

진소백은 그 말의 끝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여인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골목을 빠져나가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진소백도 뒤따랐다.

시장은 그새 조금씩 소리를 얻고 있었다. 생선 비린내와 젖은 짚 냄새, 갓 찐 만두의 김, 눅눅한 약재 냄새가 뒤엉켰다. 여인은 익숙한 듯 가판 사이를 지나며 몇몇 노파와 말을 섞었다. 말린 당귀 한 줌을 팔고, 아이 배앓이에 좋다는 가루를 조금 덜어 주고, 허리 아픈 사내에게는 값싼 술담금 약재를 권했다.

그녀는 장사를 잘했다.

그런데 장사만 하지는 않았다.

“어젯밤에도 북나루 쪽에 불이 켜졌나요?”

“그 배는 며칠째 묶여 있어요?”

“남문 다리 밑에서 기침하던 노인은 어디로 옮겼나요?”

진소백은 뒤에서 들리는 말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여인은 약값을 흥정하는 사이에 질문을 던졌고, 상대가 대답하기 전에 다른 약재 이름을 꺼내 경계를 흐렸다. 누구도 그녀가 무엇을 캐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듯했다.

하지만 진소백은 알아차렸다.

그녀는 죽은 사람들의 길목을 훑고 있었다. 진소백이 어제 하루 종일 물어도 얻지 못한 것들을, 여인은 약재 두 냥과 미소 한 번으로 얻어냈다. 그 사실이 불편했다.

또 부끄러웠다.

그는 의술을 배웠다. 병든 아이를 살폈고, 맥을 짚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정보는 약방문보다 더 미끄러웠다. 수향 사람들은 외지 사내에게 닫혔고, 곽서의 이름이 물길 위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진소백이 문을 두드리면 사람들은 눈을 피했다. 여인이 약재 바구니를 내려놓으면 문은 반쯤 열렸다.

그녀가 세 번째 가판을 떠날 때, 진소백은 더 이상 뒤따르기만 할 수 없었다.

“같은 것을 찾고 있다면 나눌 수도 있소.”

여인은 멈추지 않고 말했다.

“난 나눌 게 없어요.”

“그렇다면 그대가 얻은 것을 사겠소.”

“돈 있어요?”

진소백은 말문이 막혔다. 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넉넉하지도 않았다. 여인은 그의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그럼 사지도 못하겠네요.”

“사람이 죽고 있소.”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시장 소음 속에서도 여인은 그 말을 들은 듯 발을 멈췄다.

“그대가 장사꾼이든 아니든, 이미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알고 있으면요?”

여인이 돌아보았다.

“외지인 하나가 와서 물으면 다 내놔야 해요? 하 노인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고, 밤마다 죽은 사람들을 세어 보면서, 자기가 무슨 일을 밟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소백은 가슴께가 뻣뻣해졌다.

“그대는 아는 듯 말하는군.”

“적어도 당신보다 많이 떠들지는 않아요.”

그 말은 칼집 없이 들어왔다.

진소백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허 영감 앞에서 스승의 이름을 꺼냈던 일이 떠올랐다. 하 노인 문 앞에서 너무 성급히 굴었던 일도. 아픈 아이를 돌본 뒤 마음이 놓여, 자신이 조금은 이 마을에 받아들여졌다고 착각했던 순간도.

그때 시장 한쪽의 소리가 문득 낮아졌다.

소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한 꺼풀 내려앉았다. 진소백은 그 변화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었다. 남쪽 물길에서 세 사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험한 베옷에 짧은 곤봉을 찬 사내들. 그중 하나는 진소백의 어깨를 밀쳤던 자였다.

사내의 시선이 곧장 진소백에게 꽂혔다.

“또 보네.”

사내가 웃었다. 웃음소리는 낮았지만 시장 사람들 몇이 고개를 숙였다.

진소백은 등줄기가 굳는 것을 느꼈다. 그는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피하지 않는 것과 이길 수 있는 것은 달랐다. 그의 손바닥 안쪽에 땀이 고였다.

여인은 그 장면을 한 번 보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바구니를 들었다.

“난 갑니다.”

“잠깐.”

진소백이 낮게 말했다.

“그대도 조심하시오.”

여인은 그 말을 듣고 아주 잠깐 진소백을 보았다. 이번에는 조금 이상한 표정이었다. 조심하라는 말을 오랜만에 들은 사람처럼 보였으나, 진소백은 그 이상의 뜻을 알 수 없었다.

사내들이 다가왔다.

“외지 의원 나리.” 어깨를 밀쳤던 사내가 말했다. “여기저기 콧구멍 들이밀고 다닌다지?”

진소백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지 않으려 발끝에 힘을 주었다.

“아픈 사람을 보고 다녔을 뿐이오.”

“죽은 사람도 보고 다니고.”

사내가 가까이 와서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하 노인도 찾고.”

시장 공기가 더 눅눅해졌다. 진소백은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누구도 이쪽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만두 장수는 김이 오르는 찜통 뚜껑을 괜히 들썩였고, 생선 파는 노파는 칼질을 멈추지 않았지만 손끝이 떨렸다.

“누가 그런 말을 했소?”

진소백이 물었다.

“네가 말하고 다녔잖아.”

사내는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세게 그의 어깨를 밀었다.

진소백은 버티려 했지만 몸이 뒤로 밀렸다. 발밑의 돌이 젖어 있었다. 그는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여인이 아직 근처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보았다면 더 치욕스러울 것 같았다.

“따라와.”

“어디로 말이오?”

“물 좋은 데.”

사내 둘이 양옆으로 붙었다. 곤봉은 아직 뽑지 않았지만 손이 허리 근처에 있었다. 진소백은 시장 한가운데서 버티면 사람들이 말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미 길을 비켰다.

그는 끌려가듯 남쪽 물길로 걸었다.

좁은 길이 시장을 벗어나자 냄새가 바뀌었다. 생선과 만두 냄새 대신 썩은 물풀과 젖은 나무 냄새가 났다. 낮은 창고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사이로 버려진 그물과 깨진 항아리가 쌓여 있었다. 물길 끝은 막힌 도랑처럼 어두웠다. 사람 눈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진소백은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말하시오.”

사내가 곤봉을 뽑았다.

“말은 네가 해야지. 누굴 만나고 다녔는지, 뭘 들었는지.”

“나는 의원이오.”

“의원은 병이나 보지. 죽은 놈들 이름은 왜 세?”

진소백은 뒤편을 흘끗 보았다. 빠져나갈 길은 좁았다. 사내 둘이 막고 있었다. 앞에는 곤봉을 든 자. 물가 쪽으로 뛰면 도랑에 빠질 것이다. 손이 저절로 품속을 더듬었다. 약낭뿐이었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한들, 스승의 말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손을 드는 것은 그 뒤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던.

그는 아직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었다.

“다섯 사람이 죽었소.”

진소백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마을 사람이오. 당신들도 아는 사람들일 텐데, 왜—”

곤봉이 그의 왼쪽 어깨를 때렸다.

통증이 번개처럼 팔로 내려갔다. 진소백은 숨이 턱 막혀 한쪽 무릎을 꿇을 뻔했다. 간신히 벽을 짚었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가 돌아왔다.

“말을 가려서 해.”

사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다음은 손목이다. 의원이면 손목 아깝지?”

진소백은 이를 물었다. 부끄러움이 통증보다 늦게, 그러나 더 깊게 올라왔다. 또였다. 또 그는 맞고 있었다. 수향에 온 뒤 그는 계속 무언가를 보고, 짐작하고, 걱정했지만 정작 손 하나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때 뒤쪽에서 나무 바구니가 바닥에 놓이는 소리가 났다.

아주 가벼운 소리였다.

사내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진소백도 벽을 짚은 채 시선을 들었다.

약재 처녀가 골목 입구에 서 있었다.

등짐은 그대로였고, 바구니만 발치에 내려놓은 상태였다. 시장에서와 같은 옷차림, 같은 얼굴이었다. 다만 눈이 달랐다. 조금 전까지 흥정하던 눈이 아니었다.

“길 막았어요.”

여인이 말했다.

사내가 웃었다.

“약 파는 계집은 빠져.”

“바구니 밟지 말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진소백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인의 몸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분명 앞으로 움직였는데, 눈이 따라가지 못했다. 바람이 먼저 왔다. 젖은 골목 안의 공기가 얇게 찢기듯 흔들렸다.

가장 앞에 있던 사내의 손목이 꺾였다.

곤봉이 돌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사내의 신음이 거의 동시에 터졌다. 여인은 이미 그의 옆을 지나 두 번째 사내 앞에 있었다. 손등인지 팔꿈치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내의 턱 밑을 스쳤고, 사내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세 번째 사내가 곤봉을 뽑기도 전에 여인의 발끝이 그의 무릎 안쪽을 찍었다.

쿵.

사내가 무너졌다. 물웅덩이가 튀어 진소백의 신발 끝을 적셨다.

첫 번째 사내가 욕설을 내뱉으며 다른 손으로 품속을 뒤졌다. 칼이 번쩍였다. 그 짧은 빛을 본 순간 진소백의 숨이 얼었다.

여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칼 든 손목에 닿았다. 닿았다고 느낀 다음에는 이미 칼이 허공을 돌고 있었다. 사내의 몸이 벽에 부딪쳤다. 등짐의 약초 냄새와 피 냄새가 섞였지만, 피는 많이 나지 않았다. 대신 사내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제 손목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모든 일이 몇 숨 사이에 끝났다.

진소백은 벽에 기대 선 채, 자신의 손이 아직 빈 허리춤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잡을 것도 없는 자리였다. 그는 손을 폈다.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식은땀인지 물기인지 알 수 없었다.

여인은 쓰러진 사내들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일어나면 다른 데가 부러져요.”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사내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턱을 맞은 자는 숨을 헐떡였고, 무릎을 찍힌 자는 이를 악문 채 몸을 웅크렸다. 어깨를 밀쳤던 사내는 여인을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숨을 내쉬자 맞은 어깨가 욱신거렸다.

여인이 몸을 돌렸다.

“걸을 수 있어요?”

진소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럼 여길 나가요.”

“그대는—”

“나가요.”

이번에는 명령이었다.

진소백은 더 묻지 못했다. 그는 여인의 뒤를 따라 골목을 빠져나갔다. 바구니는 여인이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집어 들었다. 방금 사람 셋을 쓰러뜨린 손으로 다시 약재 바구니를 들자,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낯설었다.

큰길로 나오기 전, 여인은 왼쪽의 좁은 다리 밑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소백은 그 뒤를 따랐다. 다리 아래에는 배 두 척이 묶여 있었고, 그늘이 짙었다. 물이 기둥을 때리며 낮게 울었다. 사람들 눈은 닿지 않았지만, 조금 전 골목보다는 트여 있었다.

여인은 그제야 멈췄다.

“고맙소.”

진소백은 어렵게 말했다.

여인은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바구니 안의 약재를 확인했다. 말린 잎 몇 장이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다시 가지런히 놓았다.

“고맙다는 말은 됐어요.”

“그래도 나는—”

“당신 때문에 장사 망칠 뻔했어요.”

진소백은 입을 다물었다.

여인은 그제야 그를 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에 어린 티는 없었다. 물가에서 오래 살아 바람을 맞은 사람처럼 피부가 희지는 않았고, 눈 밑에는 잠을 적게 잔 사람의 그늘이 있었다.

“왜 따라다녔어요?”

“그대가 같은 것을 조사하고 있다고 생각했소.”

“같은 것?”

“죽은 사람들. 하 노인. 그리고 이 마을에서 사람들이 입을 닫는 이유.”

여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셋을 한 줄에 묶은 건 누가 가르쳐 줬어요?”

진소백은 대답을 고르다 멈췄다. 그 질문 속에는 이미 인정이 들어 있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 셋이 완전히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대는 알고 있군.”

“질문은 내가 했어요.”

진소백은 맞은 어깨를 문질렀다. 통증이 조금씩 둔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는 여인의 손을 떠올렸다. 손이 보이지 않았다. 망설임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다시 덤비지 못하게 만드는 정확함. 그건 장사꾼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그가 어설프게 분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강했다.

그 사실이 목 안쪽을 마르게 했다.

“나는 진소백이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여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름까지 말하라고 한 적 없어요.”

“그대에게 내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았소.”

“필요하면 이미 알아냈겠죠.”

진소백은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여인은 말끝마다 빈틈을 막았다. 그는 자신이 조사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조사당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스승 이름도 알아냈소?”

그 말은 일부러 던진 것이었다. 허 영감이 고진명의 이름에 보였던 반응이 아직 마음에 걸렸다. 여인이 어디까지 아는지 보고 싶었다.

여인의 손이 바구니 안에서 멈췄다.

그 짧은 정지.

진소백은 그것을 보았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당신 스승이 누구든, 여기서는 도움이 안 돼요.”

여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 이름에 왜 반응했소?”

“맞아서 어깨가 아픈 사람이 말이 많네요.”

진소백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인은 바구니에서 작은 종이봉지를 꺼내 그의 앞에 던졌다. 진소백이 얼떨결에 받자, 쓴 약재 냄새가 손끝에 묻었다.

“달여 마셔요. 멍이 안으로 들면 며칠 고생해요.”

“그대가 준 약을 믿으라는 말이오?”

“못 믿으면 버려요.”

여인은 등을 돌리려 했다.

진소백은 급히 말했다.

“하 노인을 만나려 하오.”

여인의 어깨가 다시 멈췄다.

“이미 갔잖아요.”

진소백의 숨이 멎었다.

그는 하 노인 문 앞까지 갔던 일을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선화와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었다. 허봉에게도 일부러 흐려 말했다. 그런데 여인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소?”

“문 앞에서 쫓겨난 얼굴이 아직 남아 있어요.”

“농담하지 마시오.”

“농담으로 들려요?”

여인이 돌아보았다. 다리 밑 그늘 때문에 눈동자가 더 어둡게 보였다.

“하 노인은 낯선 사람을 들이지 않아요. 특히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외지인은 더더욱.”

진소백은 가슴이 찔린 듯했다.

“나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은 적 없소.”

“그럼 왜 혼자 다 물어뜯고 다녀요? 누구 이름을 어디서 꺼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람이 죽고 있으니까.”

진소백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졌다.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오. 맞소. 물길의 법도도 모르고, 곽서의 하수인 하나도 막지 못하오. 그래도 죽은 사람들을 보았소. 밤마다 숨이 끊어진 몸을 보았고, 남은 사람들이 아무 말 못 하는 것도 보았소.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묻는 것이오. 그게 그대 눈에 어리석어 보인다면 어쩔 수 없소.”

말을 마친 뒤, 그는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후회해도 늦었다.

여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리 위로 누군가 지나갔다. 발소리가 나무판을 따라 둔탁하게 울렸다. 물 위에는 얇은 기름막 같은 빛이 흔들렸다. 진소백은 여인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읽으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웃지도, 노하지도 않았다.

“죽은 사람들 몸에서 뭘 봤어요?”

마침내 여인이 물었다.

진소백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가 경계할 차례였다. 여인은 그보다 많은 것을 아는 듯했다. 하지만 왜 아는지, 누구를 위해 아는지 알 수 없었다. 방금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라는 사실과,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서 있었다.

“그대는 무엇을 알고 있소?”

“서로 캐묻지 말자면서요?”

“그건 그대가 한 말이오.”

“그리고 당신은 잘 못 지켰고요.”

진소백은 종이봉지를 움켜쥐었다.

“맥은 이상하지 않았소.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병사처럼 보이지 않았소. 다만 몸이 지나치게 차가웠고, 손톱 밑에 검푸른 기운이 있었소. 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 번째 사람까지 봤어요?”

진소백은 말을 멈췄다.

몇 번째.

여인은 죽음의 순서를 알고 있었다.

“다섯째까지.”

“넷째는 봤어요?”

“먼발치에서만. 가족들이 들이지 않았소.”

“둘째는?”

“이미 묻혔다 들었소.”

여인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확인하는 듯했다. 그 움직임이 진소백을 더 불안하게 했다.

“당신이 본 건 늦은 흔적이에요.”

“늦은 흔적?”

“처음 몸에 남는 건 따로 있어요.”

진소백은 다가서려다 멈췄다.

“무엇이오?”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리 밖, 하 노인의 집이 있는 쪽 물길을 바라보았다. 그 방향에는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았다. 낮은 집들의 지붕만 흐릿하게 떠 있었다.

“하 노인을 혼자 찾아가지 마요.”

“위험해서?”

“쫓겨나니까요.”

“그대는 만날 수 있소?”

여인은 다시 그를 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이미 많이 알고 있으니까.”

“많이 안다고 문이 열리진 않아요.”

“그럼 그대도 못 만났소?”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의 결이 이상했다. 모른다는 침묵은 아니었다. 말할 수 없다는 쪽에 가까웠다. 진소백은 더 캐묻고 싶었지만, 조금 전 골목에서 보았던 손을 떠올리자 말이 목에 걸렸다.

그녀는 그를 구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가진 조각을 하나씩 헤아리고 있었다. 하 노인, 죽은 사람들의 순서, 스승의 이름. 그녀가 바구니에 약재를 담듯, 그의 말도 골라 담는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오?”

진소백은 결국 그렇게 물었다.

여인은 그 질문이 의외였는지 눈을 가늘게 했다.

“왜 내가 시키는 걸 하려고 해요?”

“시키라는 뜻이 아니오. 같은 일을 보고 있다면, 적어도 서로 방해는 하지 않는 편이 낫소.”

“방금은 내 장사를 방해했어요.”

“사과하겠소.”

“사과도 됐어요.”

그녀는 바구니를 들고 다리 밖으로 나섰다. 햇빛이 희미하게 올라오며 젖은 돌 위에 밝은 선을 만들었다. 여인의 그림자가 물결에 잘려 흔들렸다.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북나루의 빈 창고 근처에는 가지 마요.”

진소백은 즉시 물었다.

“왜요?”

여인이 처음으로 그의 말투를 따라 하듯 되물었다.

“왜냐고 물을 줄 알았어요.”

“이유를 알아야 판단하오.”

“그래서 문제예요. 판단하려고 하니까.”

진소백은 입술을 다물었다.

여인은 몇 걸음 걸어가다 다시 멈췄다. 시장 쪽에서 사내들의 고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조금 전 맞은 자들이 정신을 차렸을지도 몰랐다. 그 소리에 진소백의 어깨가 다시 욱신거렸다.

“하 노인에게 다시 가려면, 빈손으로 가지 마요.”

여인이 말했다.

“무엇을 가져가야 하오?”

“당신 스승 이름 말고요.”

진소백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여인은 그가 놀란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바구니를 고쳐 들고 시장 쪽이 아닌 좁은 물길을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로 섞이지 않고, 안개가 덜 걷힌 길을 골랐다.

진소백은 그 뒷모습을 붙잡지 못했다.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원하면 사라질 것이고, 그가 막아선다 해도 방금 골목의 사내들처럼 될 뿐이었다. 그는 종이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약재 냄새가 손바닥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쓴 향 속에 아주 희미한 꽃내가 섞여 있는 듯했지만, 곧 물비린내에 묻혔다.

그는 다리 기둥에 기대어 한참 서 있었다.

구해졌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가 혼자였다면 손목 하나쯤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나쁜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마움보다 먼저 올라온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는 또 지켜지기만 했다. 스승의 이름을 품고, 의술을 조금 배웠고, 죽음의 흔적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젖은 골목 하나도 제 힘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인.

약재를 팔며 마을을 훑는 처녀. 하 노인의 이름에 반응하고, 죽은 사람들의 순서를 알고, 진소백이 문 앞에서 거절당한 것까지 알고 있던 사람.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고, 사람을 쓰러뜨릴 때 망설임이 없던 사람.

그녀는 조력자처럼 나타났고, 심문자처럼 사라졌다.

진소백은 종이봉지를 품에 넣었다. 북나루의 빈 창고에는 가지 말라는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가지 말라는 말은 대개 그곳에 무언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노리고 말했을까, 막으려 말했을까.

하 노인에게 빈손으로 가지 말라.

스승 이름 말고.

그 말이 가장 오래 남았다. 고진명이라는 이름이 이 물가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 여인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진소백보다 먼저, 더 깊이.

다리 위의 햇빛이 조금 밝아졌다. 시장은 다시 소리를 되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생선을 팔고, 배를 묶고, 약을 샀다. 다섯 번의 죽음 뒤에도 수향은 그렇게 움직였다.

진소백은 어깨의 통증을 누르며 물길 너머를 바라보았다.

하 노인의 집 쪽 안개가 천천히 걷히고 있었다. 그 안개 속으로 방금의 여인이 사라진 길이 이어져 있었다. 진소백은 자신이 그녀를 따라가야 하는지, 피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마을에서 그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누군가는 이미 안쪽에서 귀를 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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