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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서두른 대가

크레인 경고음이 부두 위를 짧게 긁었다. 도경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작업자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다. 컨테이너 사이로 실린더형 수중음향 부표 세 대가 끌려 나왔다. 아직 고정 링에 녹이 남아 있었고, 케이블 드럼의 표시등 하나가 불규칙하게 깜박였다.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는 아직 답이 없었다. 유품이 좌표 해독에 쓸모가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반면 세이렌은 이미 어제 자료실에 들어갔다는 말이 돌았다. 기다릴 시간과 움직일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도경은 유품을 기다리는 대신 독립 측위부터 하기로 했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 순서가 틀렸겠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예비 점검은 오후 네 시로 되어 있습니다.”

현장 기사 김도현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도경은 화면을 보지 않고 부표 외피를 두드렸다. 둔한 금속음. 내부 완충재가 조금 밀린 소리였다.

“두 시로 당겨요.”

“하리시 승인 전입니다.”

“승인은 따라옵니다. 먼저 묶어요.”

도경은 세이렌 밴이 등록소 앞에 서 있던 장면을 다시 밀어냈다. 밀어내도 태블릿 케이스의 깨진 모서리와 봉투 색이 남았다. 그들이 좌표 봉인 자료에 닿기 전에 도경 쪽이 먼저 바다에서 삼각 측위를 걸어야 했다. 실물 위치를 좁혀 두면, 문서 한 장을 늦게 받아도 버틸 수 있었다.

부표 세 대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같은 신호를 받는다. 도달 시간 차를 맞추면 발신원 범위가 줄어든다. 오늘은 먼바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근해 격자에서 장비를 띄우고, 어제 확보한 나락 구조도와 낡은 통신 주파수 목록을 대조할 예정이었다. 좌표가 없어도 방향은 얻을 수 있었다.

표시등이 다시 흔들렸다. 녹색, 녹색, 짧은 황색. 도경은 눈을 한 번 좁혔다.

“전원부 접촉 불량일 수 있습니다.”

김도현이 말했다.

“로그에 남기고 계속해요.”

“바닷물 들어가면 잡음 커집니다.”

“잡음은 현장에서 걸러요. 지금 멈추면 오늘 창이 닫힙니다.”

도경은 작업표에서 진동 보정 항목을 손가락으로 밀어 다음 단계로 넘겼다. 아직 ‘확인’ 칸은 비어 있었다.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지만, 곧 전자서명 창이 떴다. 이름을 넣자 시스템이 노란 줄로 경고를 띄웠다.

사전 보정 미완료. 배치 권고 불가.

도경은 경고창을 접었다. 권고는 금지가 아니었다. 금지와 권고 사이의 회색 지대가 오늘은 너무 넓었다. 세이렌은 그 틈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도현 씨, 드럼 풀어요.”

“아마라가 보면 멈출 겁니다.”

“그래서 아마라 오기 전에 끝내자는 겁니다.”

말하고 나서야 문장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김도현은 더 묻지 않고 장갑을 고쳐 꼈다. 도경은 두 번째 부표의 센서 캡을 열었다. 안쪽 실링은 멀쩡해 보였다. 멀쩡해 보이는 것과 멀쩡한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직업으로 먹고살았으면서도, 오늘은 보이는 쪽을 택했다.

*

아마라는 작업장 입구에서부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안전모 끈이 턱 아래에서 흔들렸다. 손에는 방금 뽑은 점검표가 들려 있었다.

“배치 승인 누가 냈어요.”

도경은 케이블 길이를 확인하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냈어요.”

“진동 보정 전이에요. 전원부 경고도 떴고요.”

“근해 부유 테스트입니다. 투하도 아니고, 선박 외곽에서 신호만 받습니다.”

“그 말은 절차가 아니에요.”

아마라의 한국어는 조금 느렸지만 단단했다. 도경은 그 단단함이 오늘 거슬렸다. 평소라면 고마워했을 정확함이었다. 지금은 길을 막는 난간처럼 보였다.

“세이렌이 같은 자료에 붙었습니다.”

“그래서 장비가 안전해져요?”

“그들이 먼저 좌표를 잡으면 우린 영영 뒤에서 해명만 합니다.”

아마라는 점검표를 도경 앞에 세웠다. 빈칸들이 줄지어 있었다. 누가 봐도 결론은 간단했다. 아직 이르다. 도경은 빈칸 대신 오른쪽 아래의 시간만 보았다. 물때와 선박 통행 제한. 두 시간이 지나면 부표는 오늘 띄울 수 없었다.

“확실해질 때까지 못 기다립니다.”

“우리는 확실해지려고 검증하는 팀이에요.”

“검증은 움직이면서도 할 수 있어요.”

“아니요. 어떤 검증은 움직이기 전에 끝내야 해요.”

도경은 부표 옆면에 붙은 임시 라벨을 눌러 붙였다. 라벨 끝이 들떠 다시 올라왔다. 손톱으로 문질렀다. 아마라가 그 작은 동작까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지금 자료가 아니라 상대를 보고 있어요.”

“상대가 자료를 가져가고 있으니까요.”

“그럼 더 천천히 해야죠. 우리 쪽 실수가 그들의 자료가 됩니다.”

도경은 대답을 삼켰다.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 늘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도진의 이름이 봉인 칸 뒤에 남아 있고, 세이렌의 발자국이 등록소 바닥에 남아 있었다. 기다리라는 말은 그 둘 사이에서 너무 얇았다.

“부표 한 대만 먼저 띄웁니다. 케이블 장력과 수신 상태 확인. 이상 나오면 바로 회수.”

“전체 보정 전 단독 배치는 금지예요.”

“권고 불가였지 금지는 아니었습니다.”

아마라가 입술을 다물었다. 그 순간 도경은 자신이 이겼다는 느낌보다 무엇을 잃었다는 계산을 먼저 했다. 하지만 계산은 늦었다. 작업자들이 이미 첫 번째 부표를 슬링에 걸고 있었다.

“내 이름을 승인란에서 빼요.”

아마라가 말했다.

도경은 태블릿을 받아 승인자를 수정했다. 손가락 하나로 아마라의 이름이 사라졌다. 빈칸이 남고, 그 자리에 도경의 이름이 복사되었다.

“책임은 내가 집니다.”

“책임은 사고 뒤에 생겨요. 안전은 사고 전에 있고요.”

아마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옆으로 물러서서 현장을 보기 시작했다. 감시자의 거리였다. 동료의 거리가 아니었다.

*

부표가 물에 닿자 케이블이 한 번 부드럽게 내려갔다. 드럼 브레이크가 낮게 울었다. 수신 모니터에는 짧은 잡음이 비처럼 찍혔다. 도경은 헤드셋 한쪽을 눌러 붙이고 신호 폭을 좁혔다.

“수심 8. 장력 안정.”

김도현의 목소리가 인터폰으로 들어왔다.

“수신 대역 열어요. 12킬로부터 18킬로까지.”

화면 아래쪽에 얇은 선이 생겼다. 오래된 통신 장비에서 새는 듯한 반복음. 고래 코다와는 달랐다. 규칙은 있었지만 생물의 호흡이 없었다. 도경은 표식을 찍었다. 나락 구조도에서 본 예비 통신 대역과 가까웠다.

“더 내려요. 15까지.”

아마라가 바로 끼어들었다.

“단독 배치 약속은 표층 확인이었어요.”

“신호가 걸렸어요.”

“그러니까 멈춰야 해요.”

도경은 드럼 쪽을 보았다. 김도현이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표시등은 아직 녹색이었다. 조금 전의 황색 깜박임은 재현되지 않았다. 도경은 손바닥으로 공기를 아래로 눌렀다.

케이블이 더 풀렸다. 부표 외피가 물속으로 반쯤 잠기며 흔들렸다. 순간 모니터의 잡음이 두꺼워졌다. 수신 선이 옆으로 번졌다가 끊겼다. 이어 드럼 쪽에서 짧은 갈림음이 났다.

“정지!”

이번에는 아마라가 먼저 소리쳤다.

김도현이 브레이크 레버를 당겼다. 레버는 절반에서 걸렸다. 드럼이 한 박자 더 돌았다. 케이블이 난간 모서리를 스치며 튀었다.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작업장을 세로로 갈랐다. 누군가 욕을 했고, 다음 순간 부표 고정 링이 비틀리며 슬링 한쪽이 풀렸다.

도경은 몸을 던지듯 앞으로 나갔다. 손이 닿기 전에 케이블 끝이 튀어 올랐다. 김도현의 팔뚝을 치고 지나갔다. 둔한 타격음 뒤에 비명이 터졌다. 부표는 난간에 부딪혀 찌그러지고, 물 위로 반쯤 잠긴 채 매달렸다.

“전원 차단! 보조줄 잡아요!”

도경은 뛰며 외쳤다. 발밑에 플라스틱 커버가 깨져 있었다. 누군가 김도현을 뒤로 끌어냈다. 장갑 사이로 피가 번졌다. 깊이를 볼 수는 없었다. 보이는 것은 손목을 감싸 쥔 손과, 계속 흔들리는 케이블뿐이었다.

아마라가 보조 차단기를 내렸다. 드럼이 멈췄다. 멈춘 뒤에도 금속은 한동안 떨었다. 도경은 난간에 몸을 붙이고 부표의 보조줄을 잡았다. 손바닥에 젖은 섬유가 파고들었다. 작업자 둘이 달라붙어 장비를 끌어올렸다. 찌그러진 센서 캡에서 바닷물이 줄줄 흘렀다.

김도현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식었고, 팔은 임시 압박대로 묶였다. 도경은 다가가려다 멈췄다. 누가 가까이 오느냐보다 누가 구급차를 부르느냐가 먼저였다.

“119 접수됐습니다. 항만 의무실도 옵니다.”

작업자가 말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 짠맛이 났다. 바닷물이 튄 것인지, 이를 물어서 난 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아마라가 바닥에서 깨진 전원 커버를 들어 올렸다. 안쪽 접점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침 경고요.”

도경은 그 말을 들었다. 변명할 문장은 많았다. 물때, 세이렌, 봉인 좌표, 한 번만 더. 어느 것도 김도현의 팔을 대신하지 못했다.

모니터에는 사고 직전의 신호가 남아 있었다. 짧은 반복음 세 묶음. 좁혀진 방향각. 도경은 화면을 껐다. 꺼진 화면에도 선이 남아 보였다.

*

저녁이 되자 준비장은 임시 폐쇄 테이프로 막혔다. 김도현은 봉합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남기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뼈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이 현장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첫 번째 부표는 침수, 드럼 브레이크는 분해 점검, 나머지 두 대는 사용 보류. 일정표의 빈칸들이 이번에는 모두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하리시는 짧게 물었다.

“누가 앞당겼습니까.”

“접니다.”

“반대 의견은 있었습니까.”

도경은 아마라 쪽을 보지 않았다.

“있었습니다.”

“그럼 기록에 남기세요. 오늘 작업은 전면 중지합니다.”

통화가 끊긴 뒤에도 도경은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항만 사무실 유리문 너머로 아마라가 장비 목록을 다시 작성하고 있었다. 필요한 말은 사과였다. 필요한 행동은 더 많았다. 도경은 문을 열었다.

“아마라.”

아마라는 펜을 멈췄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승인란에 내 이름만 남겼어요. 보고서에도 그렇게 쓸 겁니다.”

“그래야죠.”

“도현 씨 병원비와 장비 손실도 팀 예산 말고 내 책임으로 처리 요청하겠습니다.”

“그건 행정이에요.”

도경은 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아마라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큰 표정이 없었다. 그래서 말이 더 정확하게 닿았다.

“나는 당신을 믿고 멈추라고 했어요. 당신은 나를 절차로만 봤고요.”

“그렇게 보이게 했습니다.”

“보인 게 아니라 그렇게 했어요.”

도경은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수 없는 말은 짧다. 아마라는 깨진 센서 캡을 상자에 넣고 봉인을 붙였다.

“신호는 건졌나요.”

질문은 차가웠다. 비난인지 확인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일부요. 방향각이 하나 잡혔습니다. 나락 예비 대역과 겹칩니다.”

“사람 팔 하나와 부표 하나로 산 값이네요.”

도경은 시선을 내렸다. 상자 모서리에 물기가 고여 있었다. 그 물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아마라가 천으로 닦았다.

“다음엔 내 서명 없이 내 장비에 손대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 말로 대화는 끝났다. 결정이 남았다. 아마라는 도경을 현장 파트너가 아니라 위험 변수로 분류했다. 도경도 그 분류가 틀렸다고 말하지 못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오래된 동료의 이름이었다. 민재. 사고 조사팀에 있을 때 같이 음향 로그를 맞추던 사람. 도경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너 오늘 항만에서 사고 냈다며.”

“벌써 들었어?”

“좁은 업계야. 다친 사람은?”

“봉합. 신경 손상은 아직 몰라.”

민재는 잠깐 숨을 골랐다. 질책이 올 줄 알았지만, 다른 말이 왔다.

“로그 보내. 공식망 말고 연구소 임시 저장소에 올려. 내가 파손 전후 신호만 분리해 줄게.”

“도와주면 너도 엮여.”

“이미 네 이름으로 사고 보고 올라가면 더 엮일 데도 없어. 대신 하나만 해.”

“뭐.”

“이번엔 결과를 핑계로 쓰지 마.”

도경은 항만 사무실 벽에 등을 붙였다. 차가운 판넬이 작업복 너머로 닿았다. 민재는 더 묻지 않았다. 계정 주소와 만료 시간을 보내고 전화를 끊었다. 조용한 수습이었다. 예전에도 그랬다. 도경이 너무 빨리 결론으로 달려가면, 민재는 뒤에서 증거의 모서리를 맞췄다. 그 일에 익숙해진 자신이 싫었다.

도경은 사고 전 9초의 로그를 잘라 올렸다. 파일명에는 사람 이름을 넣지 않았다. 업로드가 끝나자 민재의 메시지가 왔다.

`두 번째 묶음이 반사음이면 방향각이 더 좁아진다. 장담은 못 해.`

도경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좌표는 가까워졌다. 정확한 점은 아니지만, 검은 칸 뒤의 바다가 조금 줄었다. 동시에 김도현의 피가 묻은 압박대가 흰 봉투에 담겨 병원으로 갔다. 둘은 같은 날 같은 손에서 생겼다.

어머니에게서 늦은 답장이 와 있었다.

`와라. 열쇠는 있다.`

도경은 메시지를 한 번만 읽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부두 쪽에서는 파손된 부표를 옮기는 바퀴 소리가 났다. 쇠가 바닥 턱을 넘을 때마다 짧게 걸렸다. 도경은 그 소리를 등 뒤에 두고 주차장으로 걸었다. 오늘 얻은 것은 방향이었다. 오늘 부순 것은 사람의 팔과, 아마라가 내밀었던 마지막 제동이었다.

유품을 열어야 했다. 손이 깨끗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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