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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 21/30

우발

허봉의 집 앞에는 사람들이 먼저 모여 있었다.

누가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수향에서는 이제 문 하나만 오래 닫혀 있어도 사람들이 그 앞에 섰다. 물가에서 일어난 죽음들이 마을의 발을 짧게 만들었다. 누구도 멀리 가지 못했고, 누구도 아주 돌아서지 못했다.

진소백은 사람들 틈을 밀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마당 밖 낮은 돌담 곁에 섰다. 집 안에서는 아이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짧고 얇았다.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 여자는 이미 문 옆에 서 있었다. 허리에 약주머니를 찬 채로, 닫힌 방문을 보지 않고 마당 한쪽 아궁이를 보고 있었다.

“여기서 냄새가 났다 했지.”

그녀가 말했다.

진소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새벽에도. 젖은 장작 냄새가 아니었소.”

“종이 탄내였어.”

마당에 있던 몇 사람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누군가는 “종이야 집집마다 태우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은 끝까지 힘을 얻지 못했다. 수향 사람들은 사소한 말에도 겁을 먹는 법을 배웠다.

방문이 안에서 열렸다.

허봉이 나왔다. 수염이 제대로 깎이지 않았고, 눈 밑이 꺼져 있었다. 그는 진소백을 보고 한 발 멈추었다가 곧 억지로 웃었다.

“소백아. 왜들 이러고 섰느냐. 아이가 잠을 못 잔다.”

진소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봉의 뒤로 그의 아내가 보였다. 마른 얼굴의 여인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의 뺨은 뜨거워 보였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허봉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돌아가시오. 볼 것도 없소.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

그 여자가 아궁이 쪽으로 걸어갔다. 허봉의 눈이 그녀를 따라갔다.

“거긴 왜 보시오?”

“재를 보려고.”

“재?”

“종이가 탔으면 남는 게 있지.”

허봉의 입술이 굳었다. 그는 곧 웃음을 크게 만들었다.

“종이를 태웠소. 빚 독촉장도 있고, 약방에서 받은 쪽지도 있고. 그게 죄요?”

“죄는 아니야.”

그녀는 짧게 대답하고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막대기로 식은 재를 조금 헤쳤다. 재 속에서 검게 말린 조각이 나왔다. 그녀는 손으로 집지 않고 막대 끝으로 돌렸다.

글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쪽 끝이 반듯하게 잘린 종이였다. 집에서 불쏘시개로 쓰는 헌 종이와는 달랐다. 두껍고 질겼다.

진소백은 그것을 보자 하 노인의 방바닥을 떠올렸다. 뒤집힌 상자, 찢어진 보자기, 벽 틈까지 긁은 자국. 돈궤는 열렸지만 돈은 거의 그대로였다.

“하 노인 방에도 이런 종이가 있었소.”

진소백이 말했다.

허봉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왜 내게 말하느냐?”

“허씨 아저씨가 찾던 게 돈이 아니었으니까요.”

마당이 조용해졌다. 아이가 다시 기침했다. 허봉의 아내가 아이의 등을 두드렸다. 그 소리만 들렸다.

허봉이 진소백에게 다가왔다.

“너까지 왜 이러느냐. 내가 하 노인께 밥을 가져다드린 게 몇 해냐. 내가 그분을 해쳤다고? 내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아저씨는 늘 문 앞에 밥그릇을 놓았으니까.”

“그래. 그걸 알면서!”

“그래서 더 늦게 보았소.”

허봉의 얼굴에서 억지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눈을 피했다. 진소백은 한 발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물러났다.

“방을 뒤진 사람은 손이 서툴렀소. 장정의 힘은 있었지만, 무공을 익힌 자가 아니었소. 물건을 뒤집는 순서도 없었고, 도망갈 길도 미리 봐 두지 않았소. 무공 흔적이 없다는 말은 외지 고수가 아니라는 뜻이었소. 하 노인과 가까워도 의심받지 않을 사람.”

허봉이 이를 악물었다.

“그런 사람은 많다. 수향 사람들은 다 그 노인을 안다.”

“밥그릇을 놓는 사람은 하나였소.”

“그게 죄냐!”

허봉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이가 놀라 울먹였다. 그의 아내가 “봉이 아버지” 하고 작게 불렀다. 허봉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그 여자가 일어섰다. 그녀는 재가 묻은 막대기를 땅에 놓았다.

“전당포 주인이 네 이름을 말했다.”

허봉의 어깨가 움직였다.

그녀는 말을 길게 잇지 않았다. “은비녀. 겨울솜옷. 낚싯그물. 세 번 맡겼고, 두 번은 이자를 못 냈어.”

허봉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가난한 게 살인 증거요?”

“도박 빚도 있었지.”

이번에는 마당 밖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허봉의 아내가 아이를 더 세게 안았다. 허봉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오. 아니야. 그건 옛날 일이오. 끊었소. 다들 알지 않소? 내가 요즘 어디 다닌 적 있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진소백은 허봉의 손을 보았다. 손등에 작은 상처들이 있었다. 나뭇가지에 긁힌 것과는 달랐다. 살갗이 얇게 벗겨지고, 마른 피가 손톱가에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아저씨는 집에 있었다고 했소.”

“있었다.”

“아이 열이 올라서 밤새 물수건을 갈았다고 했지요.”

“그랬다.”

“그런데 아저씨 아내는 초저녁부터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고 했소. 물수건은 새벽닭 울고 나서야 갈았다고.”

허봉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아내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내가 그랬소?”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허봉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목울대가 한 번 움직였다.

진소백이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그날 하 노인 댁으로 갔소. 평소처럼 밥그릇을 놓으러 간 것처럼 보였겠지.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요. 문이 닫혀 있으면 그냥 돌아서면 됐고, 열려 있으면 안으로 들어가면 됐소.”

“소백아.”

허봉이 낮게 불렀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 부탁이 섞였다.

진소백은 그 부름을 듣고 발끝을 멈추었다. 어릴 적 같으면 그 한마디에 말이 막혔을지도 몰랐다. 허봉은 늘 큰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던 사람이었다. 물가에서 돌아오면 “아직도 젖은 신발로 다니느냐”고 타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 노인은 피를 흘린 채 누워 있었다. 피가 말라붙은 방바닥을 진소백은 보았다. 하 노인의 숨이 실처럼 오르내리는 것도 보았다.

“아저씨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소.”

허봉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설명은 만들면 된다. 너희가 만들고 있잖아. 종이 탄내? 빚? 알리바이? 가난한 사람 몰아붙이면 다 죄인이 되지.”

그 말에 몇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진소백도 곧바로 받아치지 못했다. 허봉의 말은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 가난은 늘 남의 손가락에 잘 걸렸다. 수향에서 빚 없는 집은 드물었고, 아픈 사람 없는 집도 드물었다.

그 여자가 품에서 작은 천 조각을 꺼냈다.

“그럼 이것도 만들어 낸 건가.”

천 조각에는 검은 때가 묻어 있었다. 진소백은 그것을 알아보았다. 하 노인의 방문 안쪽 문고리에 걸려 있던 옷감 조각이었다. 거칠고 낡은 푸른 베.

허봉은 천 조각을 보는 순간 손을 뒤로 숨겼다.

그 여자가 말했다. “네 소매 끝이 찢어졌어.”

허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 노인이 쓰러진 밤, 문 안쪽에 걸려 있던 조각이야. 밖에서 밀고 들어가다 걸린 거겠지. 네가 다급하게 빠져나오며 찢겼고.”

허봉은 천천히 자기 소매를 보았다. 오른쪽 소맷부리 안쪽이 어설프게 꿰매져 있었다. 색이 조금 다른 실이었다. 촘촘하지도 않았다. 급히 꿰맨 자국이었다.

“이건…… 그물에 걸려서.”

“그물은 안쪽 소매를 그렇게 찢지 않아.”

그 여자는 더 말하지 않았다.

진소백은 허봉의 얼굴을 보았다. 부인할 말이 남았는지, 분노할 힘이 남았는지. 허봉은 한동안 입만 벌리고 서 있었다. 그러다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턱이 떨렸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그는 진소백에게 물었다.

“하 노인을 친 게 아저씨냐고 묻는 거요.”

“아니라면?”

“그럼 이 조각들이 왜 모두 아저씨에게 이어지는지 말해 주시오.”

“모른다.”

“전당포는?”

“가난해서 갔다.”

“도박 빚은?”

“끊었다 했잖아.”

“종이 탄내는?”

“태울 게 있었다.”

“하 노인 방에 있던 것과 같은 종이는?”

“모른다!”

허봉이 소리쳤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아내가 뒤로 물러나다 문턱에 발이 걸려 주저앉을 뻔했다. 진소백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허봉은 자기 목소리에 놀란 듯 입을 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숨이 새었다. 눈이 붉어졌다.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 말은 더 이상 부인이 아니라, 무언가를 붙들려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가 “허씨……” 하고 불렀다. 허봉은 듣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 여자가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진소백과 허봉 사이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진소백은 천천히 말했다.

“아저씨. 누가 시켰소?”

허봉의 눈이 흔들렸다.

“무슨 말이냐.”

“아저씨가 하 노인을 미워해서 한 일이 아니면, 누가 시킨 거요. 어떤 종이를 찾으라 했소?”

허봉의 입술이 파래졌다. 그는 문간 쪽을 보았다.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아내는 아이의 입을 막듯 끌어안고 있었지만, 아이의 울음은 손바닥 사이로 새어 나왔다.

“말하면 안 된다.”

허봉이 중얼거렸다.

진소백은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작았지만 분명했다.

“누가 말하지 말라 했소?”

허봉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얼굴을 보았소?”

“모른다.”

“아저씨.”

“모른다고!”

그는 다시 소리쳤지만 이번에는 힘이 없었다. 마당의 바닥이 그의 발밑에서 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나는…… 정말 몰라. 얼굴도 못 봤다. 밤이었고, 비도 오고, 그는 담장 밖에 서 있었다. 목소리만 들었다. 종이를 가져오라 했다. 하 노인이 가진 종이. 그것만 가져오면 빚을 없애 준다 했다.”

그의 아내가 숨을 삼켰다.

허봉은 그 소리에 몸을 굳혔다. 진소백은 더 묻지 않았다. 허봉의 말은 끊어진 둑처럼 조금씩 흘러나왔다.

“처음엔 안 하려 했다. 내가 왜 하 노인 방을 뒤지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내 이름을 알더라. 전당포도, 노름판도, 아이 약값도. 며칠 안에 돈을 못 갚으면…… 집을 빼앗길 거라 했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손끝에 재가 묻어 검은 자국이 났다.

“나는 종이만 가져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안 다치게. 노인은 밤에 깊이 잠드니까. 문 앞에 밥그릇 놓는 척하고 들어가서 찾으면 된다고.”

“그래서 다른 집들도 뒤졌소?”

진소백이 물었다.

허봉은 고개를 끄덕였는지 저었는지 알 수 없게 움직였다.

“하 노인이 어디 숨겼는지 몰랐다. 그 사람이 하 노인에게 있다 했지만, 혹시 맡긴 데가 있을 수도 있잖아. 가까운 집에. 노인이 가끔 들르던 집에. 나는…… 나는 찾기만 하려 했다.”

“사람들이 깼소.”

허봉의 눈에서 물이 떨어졌다. 그는 손등으로 훔치지도 않았다.

“깼다. 첫날 그 집 노파가 깼다. 소리를 지르려 했다. 나는 겁이 났다. 들키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입만 막으려 했는데, 손에 잡힌 걸 휘둘렀다. 한 번만. 정말 한 번만.”

마당의 누군가가 낮게 욕을 했다. 또 다른 이는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마당을 휘감았다. 허봉은 움찔했지만 멈추지 못했다.

“다음에는 더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번만 찾으면 끝이라고. 그런데 또 못 찾았다. 또 사람이 깼다. 나는…… 나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다. 도망치고 나면 손이 떨렸다. 피가 묻어 있으면 강가에서 씻었다. 집에 들어오면 아이가 자고 있었다. 아이 숨소리를 들으면, 내가 아직 사람인 것 같았다.”

그의 아내가 비틀거리며 방 문틀을 붙잡았다.

“당신이……?”

허봉은 그제야 아내를 보았다. 얼굴이 무너졌다. 그는 무릎을 꿇으려다 다시 버텼다.

“여보, 나는 살리려고 했다. 우리 애 살리려고. 약값이 없었잖아. 내가 빚을 만든 건 내 죄다. 맞다. 그런데 애가 죽게 둘 수는 없었다. 한 번만 하면 된다고 했다. 정말 한 번이면 된다고.”

아이의 울음이 약해졌다. 너무 울어서 기운이 빠진 듯했다. 그 작은 소리가 진소백의 귀에 오래 남았다.

진소백은 겨우 입을 열었다.

“하 노인은?”

허봉의 몸이 굳었다.

“하 노인은 왜 쳤소?”

“그날은…… 그날은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방 안을 다 뒤졌다. 벽 틈도, 베개 속도, 밥상 밑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가려는데 노인이 눈을 떴다.”

허봉은 바닥을 보았다. 마치 그 방바닥이 여기 있는 것처럼.

“그분이 내 이름을 불렀다. ‘봉이냐’ 하고. 그냥 그렇게 불렀다. 화도 안 내고. 왜 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나는 그 소리가 더 무서웠다. 노인이 알면, 마을이 알고, 내 아내가 알고, 아이가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는 두 손으로 자기 목을 감싸 쥐었다.

“밀쳤다. 비키라고. 그런데 노인이 내 팔을 잡았다. 힘도 없는 손이었는데 안 떨어졌다. 나는…… 나는 옆에 있던 걸 들었다. 죽이려던 게 아니었다. 입을 막으려 했다. 잠깐만 조용히 하게 하려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

진소백이 낮게 말했다.

허봉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빈 그릇 같았다.

“그래. 없었다. 없었어. 나는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쓰러졌다. 소리가 안 났다. 피가 났다. 그때부터는 다 끝난 줄 알았다.”

마당 밖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다. 가까이 있던 죄가 자기 옷자락에 묻을까 봐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말없이 허봉을 보고 있었다. 진소백은 그녀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을 수 없었다. 읽어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그 종이는 찾았소?”

진소백이 물었다.

허봉은 고개를 저었다.

“못 찾았다. 한 번도. 뭔지도 모른다. 왜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저 종이라 했다. 하 노인이 가진 어떤 종이. 그뿐이었다.”

“그 사람은 다시 왔소?”

“아니. 아니…… 모르겠다. 누가 지켜보는 것 같긴 했다. 밤마다. 하지만 본 적은 없다.”

허봉은 말을 멈췄다. 더 꺼내면 안 되는 것을 삼킨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진소백은 그 너머를 묻고 싶었다. 담장 밖의 목소리. 빚을 알고 있던 자. 하 노인의 종이를 찾던 자. 그러나 허봉의 눈에는 대답이 없었다. 두려움만 있었다. 아는 자의 두려움이 아니라, 모르는 곳에서 목이 잡힌 자의 두려움이었다.

“밥그릇은 왜 놓았소?”

진소백이 물었다.

허봉은 그 말에 무너졌다. 무릎이 흙바닥에 닿았다. 그는 손으로 땅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못 끊겠더라.”

그의 목소리는 거의 흐느낌이었다.

“안 놓으면 정말 내가 그분을 버린 것 같았다. 놓으면…… 놓으면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신 것 같았다. 내가 늘 하던 일이니까. 문 앞에 밥을 놓고 돌아서면, 아무 일도 없던 때로 조금은 돌아간 것 같았다.”

진소백의 손이 차가워졌다.

그 밥그릇을 보고 그는 허봉을 의심하지 않았다. 죄책감이 만든 손길을 정이라 착각했다. 아니, 정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게 더 견디기 어려웠다. 허봉은 하 노인을 해치고도 밥을 놓았다. 죽은 사람들의 집을 뒤지고도 아이의 약을 구하려 했다. 한 손으로 사람을 무너뜨리고, 다른 손으로 제 가족을 붙들었다.

둘 중 하나만이면 쉬웠을 것이다.

악한 자라면 잡으면 되었다. 불쌍한 자라면 도우면 되었다. 그런데 허봉은 둘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진소백은 그를 어느 쪽으로도 밀어 넣을 수 없었다.

허봉의 아내가 천천히 마당으로 내려왔다. 아이를 안은 채였다. 사람들은 길을 비켰다. 그녀는 허봉 앞에 섰다.

“당신이 그랬어요?”

허봉은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당신이?”

“여보.”

“우리 애 때문에?”

허봉은 바닥에 이마를 가까이 했다.

“미안하다.”

그 말이 나오자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아이를 놓칠 듯 흔들렸고, 옆집 여인이 급히 다가와 아이를 받쳐 주었다. 아이는 울다 지쳐 눈을 감고 있었다. 작은 손이 허공을 더듬다가 어머니의 옷깃을 쥐었다.

허봉의 아내는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허봉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의 입술이었다. 원망도, 분노도, 애원도 아직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어쩌라고.”

그녀가 말했다.

허봉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한마디가 진소백의 가슴에 들어와 멈췄다. 그는 허봉의 자백을 들었다. 죽은 이들의 억울함은 길을 찾았다. 하 노인을 해친 손도 드러났다. 수향의 밤을 눌러 왔던 그림자 하나가 마당 한복판에 끌려 나왔다.

그런데 그 그림자 아래에 아이가 있었다. 아내가 있었다. 빚이 있었고 약값이 있었다. 진실은 칼처럼 곧게 서지 않았다. 그것은 쓰러지는 지붕처럼 주변을 함께 덮쳤다.

마을 사람들이 허봉에게 다가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분노한 손이 그의 멱살을 잡으려 했고, 다른 손이 말렸다. “관아에 넘겨야지.” “죽은 사람들은?” “아이 앞이다.” 말들이 뒤엉켰다.

진소백은 한 걸음 물러섰다.

허봉은 끌려가며 저항하지 않았다. 다만 한 번,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아내는 아이의 얼굴을 자기 품에 묻었다. 허봉의 시선은 거기서 막혔다.

“여보, 약은…… 약은 서랍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의 입을 막았다.

진소백은 그 손을 치우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허봉이 남긴 마지막 걱정이 약이라는 사실이 진소백을 붙들었다. 그 걱정이 죄를 덜어 주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을 살리지도 못했다. 하 노인의 찢어진 숨을 온전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것은 거기 있었다.

그 여자가 그의 곁으로 왔다. 그녀는 마당 끝을 보며 말했다.

“끝났네.”

진소백은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끝난 겁니까?”

그녀는 그를 보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밤마다 사람을 치던 손은 멈췄어.”

“그 손을 움직이게 한 목소리는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소백은 더 묻지 않았다. 허봉도 몰랐다. 그녀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 이 마당에서 드러난 것은 허봉의 죄뿐이었다. 그 밖의 어둠은 아직 담장 너머에 있었다.

허봉의 아내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서랍을 여는 소리가 났다. 약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아이는 다시 기침했다. 이번에는 울 힘도 없는 기침이었다.

진소백은 문득 하 노인의 방을 떠올렸다. 피 냄새와 흐트러진 이불, 닫히지 않던 손. 아직 살아 있다고 했다. 사경이라고 했다. 그 말은 삶도 죽음도 아니어서 사람을 더 오래 붙들었다.

그는 하 노인이 눈을 뜨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범인은 잡았습니다. 밥그릇을 놓던 허봉이었습니다. 종이는 찾지 못했습니다. 누가 시켰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친 사람은 죽이려던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느 말도 입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당의 사람들은 조금씩 흩어졌다. 누군가는 죽은 이들의 집으로 달려갔고, 누군가는 허봉을 끌고 관아 쪽 길로 향했다. 흙바닥에는 무릎 자국이 남았다. 아궁이 옆에는 검게 탄 종이 조각이 그대로 있었다.

진소백은 그것을 주워 들지 않았다.

그 여자가 막대기로 재를 덮었다. 바람이 불어 재가 낮게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가자.”

그녀가 말했다.

진소백은 움직이지 않았다. 허봉의 집 안에서 약을 물에 타는 소리가 났다. 여인의 낮은 울음이 그 소리에 섞였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진소백은 범인을 찾았다. 죽은 사람들에게 대답할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꺼내는 순간, 한 집이 바닥부터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진실은 어둠을 걷어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드러내고, 그 얼굴들이 서로를 더는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허봉의 아내가 방 안에서 작게 말했다.

“먹어야지. 삼켜야지.”

아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 소리를 등지고 돌아섰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수향의 길은 낮인데도 젖은 듯 무거웠다. 하 노인이 누워 있는 집 쪽으로 가야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숨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허봉의 집 문이 닫혔다.

그 소리가 오래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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