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관문
수향을 벗어나자 길이 넓어졌다.
진소백은 처음엔 그것이 길의 폭 때문인 줄 알았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도 남는 길, 그 옆으로 소달구지가 지나가도 발을 물릴 필요가 없는 길. 그러나 반나절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넓어진 것은 흙길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졌다.
새벽 안개가 걷힐 때쯤 앞서 가던 짐꾼 셋이 길가에 앉아 짚신을 갈아 신었다. 그 곁을 지나던 사내 둘은 등에 칼을 메고 있었는데, 칼집보다 허리춤의 술병이 더 커 보였다. 뒤이어 말 세 필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말 위의 자들은 모두 같은 검은 웃옷을 입고 있었고, 소매 끝에는 붉은 실로 둥근 표식이 수놓여 있었다.
진소백은 그 표식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사람들, 같은 의원인가?”
유란이 옆에서 걷다가 고개만 돌렸다.
“어째서?”
“소매에 표시를 맞췄잖소. 우리 약방도 독한 약 달일 때 항아리에 붉은 끈을 묶었소. 헷갈리지 말라고.”
말을 탄 자들 가운데 하나가 그때 마침 침을 뱉었다. 침은 흙먼지 위에 검게 번졌다.
유란은 잠깐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의원이라기엔 환자를 너무 빨리 만들 것 같은데.”
진소백은 다시 그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말안장에 매달린 둥근 방패, 말굽에 튀는 진흙, 허리에 찬 짧은 칼. 아무래도 약재를 나르는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그럼 표국?”
“표국은 보통 짐을 지키지,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저렇게 훑지는 않지.”
“그럼 문파?”
유란은 대답 대신 길 오른편을 가리켰다. 길가에 세운 낡은 팻말이 바람에 삐걱거렸다. 팻말에는 먹이 번져 글자가 반쯤 흐려져 있었다.
청○문 제자 모집. 밥 두 끼. 숙식 별도.
진소백은 그 아래 작게 붙은 종이를 읽었다.
다친 자 본인 부담.
그는 진심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밥 두 끼에 다친 건 본인 부담이면, 제자가 아니라 환자를 모집하는 것 아니오?”
유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강호에는 그런 의원도 필요하겠지.”
“나는 사절이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비켜라!” 하는 외침이 들렸다. 진소백이 길가로 물러서자 네 사람이 멍석을 덮은 수레를 밀고 지나갔다. 멍석 아래에서는 나무상자들이 덜컹거렸고, 상자 옆면에는 파란 글씨로 ‘청하표국’이라 쓰여 있었다. 수레 뒤에는 장정 다섯이 창을 들고 걸었다. 그중 가장 어린 자의 얼굴에는 아직 수염이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어깨를 잔뜩 세운 모양이 꼭 새 옷을 입은 아이 같았다.
“청하표국이 또 북쪽으로 간대.”
길가에서 짚신을 신던 짐꾼 하나가 말했다.
“북쪽 길은 요즘 뒤숭숭하다던데.”
“뒤숭숭하지 않은 길이 어디 있나. 지난달엔 칼 든 놈들이 비단만 털고, 사람은 풀어줬다더군.”
“그거야 비단이 사람보다 비싸서 그런 거지.”
셋이 낄낄 웃었다.
진소백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수레가 지나간 뒤 남은 바퀴 자국을 보았다. 흙이 깊게 눌려 있었다. 짐이 무겁다는 뜻이었다. 표국 사람들이 지키는 것은 상자였고, 상자를 노리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어릴 적 약방 뒤뜰에서 햇볕에 말리던 약재를 훔쳐 가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때도 훔친 것은 약이 아니라 배고픔이었지만, 맞은 것은 등짝이었다.
“강호라는 곳은,” 진소백이 말했다. “짐이 많으면 칼도 많아지는 모양이오.”
“빈손이면?”
“그럼 칼 맞아도 빼앗길 것이 없으니 다행이고.”
“그런 생각으로 오래 살긴 어렵겠네.”
“의원은 원래 안 좋은 경우를 먼저 생각하오.”
유란은 길 위의 먼지를 피해 한 걸음 옆으로 비켜 걸었다. 그녀는 수향에서보다 말이 적었다. 그러나 침묵하고 있는 동안에도 눈은 계속 움직였다. 지나가는 자들의 신발, 손목, 허리춤, 수레 밑, 길가의 숲 그늘. 진소백은 그 눈길을 따라 하다가 금세 피곤해졌다. 세상에는 살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정오 무렵에는 길가 찻집에 들렀다. 찻집이라기엔 기둥 네 개에 천막을 얹은 곳이었다. 솥에서는 보리차 냄새가 났고, 옆 화덕에서는 기름 묻은 떡이 지글거렸다. 천막 안에는 먼저 온 길손들이 앉아 있었다. 삿갓을 눌러쓴 노인, 등에 활을 멘 사내, 작은 북을 끼고 다니는 이야기꾼, 그리고 팔뚝에 붕대를 감은 청년 둘.
진소백은 붕대를 보자마자 눈이 갔다.
“그건 너무 꽉 묶었소.”
청년 하나가 떡을 씹다 말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
“손끝이 붉소. 피가 몰렸소. 조금 풀어야 하오. 아니, 매듭부터—”
청년은 손을 뒤로 뺐다. 맞은편 청년이 코웃음을 쳤다.
“어디 약장수냐?”
“약장수는 아니고 의원이오.”
그 말에 천막 안의 몇 사람이 동시에 진소백을 보았다. 시선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와 닿았다. 진소백은 자신이 뭘 잘못 말했는지 몰라 눈을 깜박였다. 의원이라고 했을 뿐인데, 누군가는 반가워하고 누군가는 경계하는 얼굴이었다.
유란이 조용히 그의 옷소매를 당겼다.
“앉아.”
“하지만 저 매듭은—”
“저 사람은 그 매듭을 자랑하려고 일부러 보이게 감았을 수도 있어.”
진소백은 다시 붕대를 보았다. 피가 묻어 있긴 했지만, 감은 모양이 지나치게 반듯했다. 정말 자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인은 다친 것도 간판처럼 내거는가. 그는 잠자코 앉았다.
보리차가 나왔다. 잔은 깨진 곳을 옻으로 메운 것이었고, 차에는 볶은 곡식 냄새가 묻어 있었다. 진소백은 뜨거운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야기꾼이 북을 톡톡 쳤다.
“어젯밤 동문 밖에서 세 사람이 쓰러졌다지. 한 사람은 칼집째 부러지고, 한 사람은 신발만 남고, 한 사람은 자기 이름도 잊었다더라.”
“이름은 술 먹고도 잊지.”
“그게 술이면 다행이지. 듣자 하니 개방 노칠이 그 근방을 지나갔다더군.”
누군가 낮게 “노칠?” 하고 되물었다.
“이름만 들어도 술맛이 떨어지는 놈이지.”
“아니, 난 오히려 오른다. 그런 놈이 지나가면 반드시 뭔가 떨어지거든.”
“떨어지는 게 동전이면 좋고, 목이면 나쁘고.”
웃음이 번졌다. 진소백은 잔을 입에 대다 말았다.
개방 노칠.
이름은 수향을 나선 뒤 처음 들었다. 그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개방이라면 거지들의 무리라고 들은 적은 있었다. 노칠이라면 일곱 번째 노인인가, 성이 노씨인 일곱째인가, 아니면 일곱 번 늙었다는 뜻인가.
“개방 노칠이 누구요?”
진소백이 낮게 묻자 유란은 떡을 반으로 찢으며 말했다.
“지금 여기서 그걸 크게 묻는 사람은 둘 중 하나야.”
“둘?”
“정말 모르거나, 아는 척하다가 죽고 싶거나.”
진소백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정말 모르는 쪽이었지만, 강호에서는 무지가 목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옆자리 삿갓 노인이 말했다.
“노칠 얘기는 그만해. 이름만 떠들어도 귀신처럼 냄새 맡고 온다잖아.”
활을 멘 사내가 웃었다.
“귀신도 밥은 얻어먹나?”
“얻어먹는 게 아니라 뜯어먹지.”
“그럼 개방이 맞네.”
또 웃음이 났다. 진소백은 웃음 속에서 그 이름이 더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안다는 듯 말하면서도 아무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병증으로 치면 열은 높은데 맥을 못 잡는 환자 같았다.
찻집을 나설 때 유란이 떡 한 조각을 종이에 싸서 품에 넣었다. 진소백은 그것을 보며 말했다.
“아까는 배부르다 하지 않았소?”
“나중에 배고플 수 있지.”
“길 위에서는 나중을 많이 생각해야 하는군.”
“의원도 안 좋은 경우를 먼저 생각한다며.”
진소백은 할 말이 없어졌다.
오후가 기울 무렵, 관문 도시의 성루가 보였다. 먼저 보인 것은 성벽이 아니라 먼지였다. 길 위의 먼지가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이고, 그 위로 깃발들이 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커졌다. 수레바퀴 삐걱대는 소리, 말 울음, 상인들의 외침, 아이가 우는 소리, 누군가 욕하는 소리. 성문 위에는 큰 글씨가 걸려 있었지만, 진소백은 사람들 머리와 깃발에 가려 끝 글자밖에 읽지 못했다.
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두가 들어가려는 문이었다.
성문 앞에는 줄이 셋이었다. 짐수레 줄, 말 탄 자들 줄, 걸어가는 자들 줄. 줄 밖에는 줄을 만든 사람들보다 더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물을 파는 아이, 길안내를 자처하는 늙은이, 떨어진 말굽을 고치겠다는 대장장이, ‘관문 안 객잔 빈방 있음’이라 쓴 나무패를 든 소년.
그 소년은 진소백의 옷차림을 보더니 바로 다가왔다.
“나리, 객잔 찾으십니까? 깨끗한 방, 따뜻한 물, 도둑 없는 곳 있습니다.”
진소백은 진지하게 물었다.
“도둑 없는 곳이면 왜 굳이 그렇게 써 붙였소?”
소년이 눈을 깜박였다.
“예?”
“원래 객잔엔 도둑이 있소?”
소년은 잠깐 유란을 보았다. 유란은 모른 척했다.
“없습니다. 그러니까 없는 곳이라 하지요.”
“없는 걸 왜 자랑하오?”
“있으면 장사가 안 되니까요.”
진소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이상했지만 장사치의 말은 대체로 병자보다 더 복잡했다.
성문을 지나며 관졸이 사람들을 훑었다. 어떤 이에게는 짐을 열라 했고, 어떤 이에게는 그냥 손짓으로 통과시켰다. 진소백 차례가 오자 관졸은 그의 약상자를 보고 물었다.
“의원?”
“그렇소.”
“안에서 약 팔 거면 자리세 내야 한다.”
“팔지는 않소.”
“그럼 사람 고칠 건가?”
진소백은 잠깐 생각했다.
“아프면 고쳐야지요.”
관졸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럼 문제 생기면 네가 책임져라.”
진소백은 성문 안으로 들어서며 유란에게 속삭였다.
“사람을 고쳐도 책임을 져야 하오?”
“못 고쳐도 져.”
“강호는 의원에게 불리하군.”
“세상 대부분이 그래.”
성문 안쪽은 바깥보다 더 복잡했다. 길 양편으로 간판이 빽빽했다. ‘비룡객잔’, ‘금풍주루’, ‘삼일검방’, ‘오씨말굽’, ‘상처 꿰맴 가능’이라 적힌 헝겊도 있었다. 그 헝겊 아래 앉은 사내는 바늘을 입에 물고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진소백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저건 의원인가?”
유란이 보지도 않고 말했다.
“닭에게는 아니겠지.”
“바늘을 입에 물고 있소. 소독은?”
“여기서 그 말을 하면 네가 대신 꿰매게 될 거야.”
진소백은 한숨을 삼켰다. 세상에는 고쳐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가 다 고치려 들면 먼저 자신이 고쳐져야 할 판이었다.
저잣거리에는 소문도 물건처럼 팔렸다. 생강엿을 파는 여인은 엿가락을 늘이며 말했다.
“동쪽 객잔엔 오늘 들어가지 마세요. 아침부터 칼 찬 도련님들이 방을 통째로 잡았답니다.”
맞은편 생선장수는 비늘을 긁으며 받았다.
“도련님들이 방 잡은 게 무섭나? 돈 안 내는 게 무섭지.”
“돈은 냈대요. 대신 웃는 사람을 싫어한다나.”
“그럼 자네는 못 가겠군. 늘 웃고 있으니.”
“장사할 땐 웃어야죠. 울면서 엿 팔까요?”
진소백은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유란이 그를 힐끗 보았다.
“웃는 사람을 싫어한다는데.”
“나는 아직 동쪽 객잔에 안 갔소.”
“다행이네.”
그들이 들어간 곳은 서쪽 골목의 작은 객잔이었다. 간판은 반쯤 기울어 있었고, ‘운래객잔’의 ‘래’ 자가 비에 씻겨 ‘운객잔’처럼 보였다. 주인은 배가 나온 중년 사내였는데, 손님보다 주판알을 더 오래 보았다.
“방 둘?”
유란이 말했다.
“하나.”
진소백은 기침을 했다.
“둘이오.”
주인이 주판알을 멈췄다. 유란은 진소백을 보지 않고 말했다.
“돈 아껴야 해.”
“그러다 소문이 더 비싸게 붙소.”
주인이 그제야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얼굴에는 장사꾼 특유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방 하나도 있고, 둘도 있습니다. 다만 둘은 비쌉니다.”
“얼마나?”
주인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진소백은 품을 더듬었다. 남은 돈을 세기도 전에 유란이 종이에 싼 떡을 탁자 위에 올렸다.
주인이 떡을 보았다.
“이건 뭡니까?”
“방값 깎을 이유.”
“떡으로요?”
“아직 따뜻해.”
주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다가 손으로 떡을 눌러 보았다. 정말 조금 따뜻했는지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방 둘. 대신 물은 직접 길어 쓰시오.”
유란은 떡을 다시 집어 절반만 남겼다.
“깎은 만큼만.”
진소백은 그 광경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약값 흥정에서 늘 졌다. 유란은 떡 하나로 방을 늘렸다. 이것도 무공이라면 무공이었다. 물론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면 그녀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참았다.
방을 잡은 뒤 두 사람은 아래층에서 국수를 먹었다. 객잔 안에는 길손들이 빼곡했다. 벽에는 낡은 검자국이 있었고, 기둥에는 누군가 작은 글씨로 ‘빚 갚아라’라고 새겨 두었다. 그 아래 다른 글씨가 이어져 있었다.
먼저 찾아와라.
진소백은 젓가락을 들고 그 글을 보았다.
“여긴 벽도 싸우는군.”
유란이 국물 위의 파를 건져냈다.
“사람이 못 끝낸 말을 벽에 남기는 거지.”
옆자리에서는 술 취한 사내 둘이 낮게 떠들고 있었다.
“오늘 봤나? 그 흰 옷 입은 애송이들.”
“애송이라 부르다 귀 잘린다.”
“여기 없잖아.”
“벽에도 귀가 있다.”
“벽은 빚이나 갚으라 그래.”
두 사내가 웃었다. 바로 그때 객잔 문이 열렸다.
찬바람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안쪽의 소리가 한 박자 줄었다. 들어온 이들은 셋이었다. 모두 깨끗한 흰옷에 푸른 띠를 매고 있었고, 신발에는 먼지가 거의 없었다. 가운데 선 청년은 허리에 찬 검을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주인을 불렀다.
“제일 조용한 방.”
주인이 허리를 굽혔다.
“손님, 지금 방은—”
청년이 동전 꾸러미를 탁자에 던졌다. 소리가 묵직했다.
“방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객잔 안쪽 구석에 앉아 있던 늙은 부부가 서로를 보았다. 주인의 눈이 그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진소백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유란은 국수를 먹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청년 옆의 다른 자가 코끝으로 객잔 안을 훑었다.
“냄새가 심하군.”
술 취한 사내 하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숨을 쉬지 말든가.”
소리가 아주 작았는데도 흰옷 셋의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중얼거린 사내의 얼굴에서 술기운이 조금 빠졌다. 가운데 청년이 천천히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방금 뭐라 했지?”
“아무 말도 안 했소.”
“입이 있었는데 아무 말도 안 했다?”
사내는 억지로 웃었다.
“국수가 뜨거워서.”
청년은 탁자 위 국수 그릇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릇 가장자리를 밀었다. 국물이 사내의 무릎 위로 쏟아졌다. 사내가 이를 악물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객잔 안은 더 조용해졌다.
진소백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유란의 젓가락 끝이 그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충분했다.
그는 앉은 채로 물었다.
“데었을 텐데.”
유란은 아주 낮게 말했다.
“네가 지금 가면 둘이 데일 거야.”
“그럼 그냥 보오?”
“보고 기억해.”
진소백은 청년의 손을 보았다. 희고 긴 손가락, 손등의 얕은 굳은살, 검 손잡이에 닿는 엄지의 움직임. 의원의 눈은 습관처럼 상처와 뼈를 찾았다. 저 손은 사람을 때리는 손보다 칼을 오래 잡은 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국수 그릇을 밀어 사람을 눌렀다. 칼보다 쉬운 방식이었다.
주인이 재빨리 다가와 굽실거렸다.
“제가 새 국수 올리겠습니다. 손님들께는 위층 방을—”
“조용해야 한다.”
“예, 예. 아주 조용합니다.”
흰옷 셋은 계단을 올랐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객잔 안의 숨소리가 돌아왔다. 무릎에 국물을 쏟은 사내는 젖은 옷을 털며 웃었다.
“국수가 차서 다행이군.”
아무도 크게 웃지 않았다. 진소백도 웃을 수 없었다.
유란은 남은 국수를 마저 먹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진소백은 그 점이 이상하게 더 오래 눈에 남았다. 모른 척하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달랐다. 그는 방금 자신이 강호의 다른 얼굴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칼을 뽑지 않아도 누군가는 눌리고, 피가 나지 않아도 누군가는 물러났다.
수향의 곽서가 떠올랐다. 물길과 나루와 밤을 쥐고, 칼 대신 빚과 질서로 사람을 눌렀던 사내. 그때는 그것이 수향만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관문 도시의 흰옷들도 같은 손을 쓰고 있었다. 곽서는 이 넓은 강호의 작은 한 조각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조각조차 진소백은 어쩌지 못하고 떠나왔다. 곽서가 스스로 ‘손목’이라 부른 그 위에 어떤 팔이, 어떤 몸이 붙어 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알수록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도 함께 알게 되었다.
저녁이 깊자 저잣거리의 등불이 하나둘 켜졌다. 유란은 방으로 올라가 쉬겠다고 했고, 진소백은 객잔 앞에서 잠시 바람을 쐬었다. 사실 바람보다 사람을 보려는 마음이 컸다. 관문 도시는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 것 같았다. 술집에서는 웃음이 새어 나왔고, 약재상 앞에서는 늦게 온 손님이 말린 뿌리를 놓고 흥정했다. 길가의 점쟁이는 누군가의 손금을 보며 고개를 심각하게 끄덕였는데, 그 손님은 점괘보다 점쟁이의 주머니를 더 열심히 보고 있었다.
진소백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의원님?”
등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그는 돌아섰다. 작은 짐보따리를 멘 장사치가 서 있었다. 얼굴은 평범했고, 수염은 듬성듬성했다. 어깨에 멘 보따리에서는 빗, 바늘, 실꾸러미 같은 잡물이 삐죽 나와 있었다.
“바늘 필요하십니까? 의원님들은 좋은 바늘을 알아보신다던데.”
“나는 침을 놓지 않소.”
“아, 그러십니까. 그럼 약종이는요? 피 묻은 천도 있습니다. 방금 온 길이라 싸게 드립니다.”
“피 묻은 천을 왜 파오?”
장사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호인들은 그런 걸 좋아합니다. ‘이 천은 어느 고수가 베인 자리에서 나온 것’ 하면 값이 붙지요.”
진소백은 잠깐 말을 잃었다.
“그건 병이 옮을 수도 있소.”
“그러니 의원님께 먼저 여쭌 겁니다. 소독해서 팔면 더 비싸지 않겠습니까?”
진소백은 진심으로 생각에 잠겼다. 소독한 피 묻은 천. 병은 줄겠지만 사기는 늘어난다. 어느 쪽이 더 나쁜가.
“안 사오.”
“아쉽군요.”
장사치는 웃으며 물러나는 듯하다가 다시 다가왔다.
“그런데 의원님, 혹시 수향 쪽에서 오셨습니까?”
진소백의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멈췄다.
“왜 묻소?”
“아, 별일 아닙니다. 수향 의원이 솜씨가 좋다 하여. 이름이… 진, 뭐라 했던가.”
장사치는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진소백? 맞습니까?”
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소리에 섞이면 흘러갈 만큼 낮았다. 그러나 진소백에게는 그 이름이 돌멩이처럼 떨어졌다.
그는 장사치의 얼굴을 보았다. 평범했다. 너무 평범했다. 방금까지 피 묻은 천을 팔던 장사치의 능청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름을 말하는 순간 눈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기억해낸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확인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진소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사치는 웃음을 조금 더 넓혔다.
“아니면 제가 잘못 들었나 봅니다. 요즘 소문이 하도 많아서요. 관문에는 이름이 먼저 들어오고 사람이 나중에 들어온다지 않습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했소?”
“다들 합니다. 길손도 하고, 술꾼도 하고, 저 같은 장사치도 하고.”
그는 보따리를 고쳐 멨다.
“그럼 쉬십시오, 의원님. 바늘 필요하시면 서문 쪽 난전으로 오시고요.”
장사치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너무 자연스럽게 사라져서, 진소백은 한 걸음 늦게야 그를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등불 아래에는 비슷한 보따리와 비슷한 등이 너무 많았다. 빗을 파는 자, 실을 파는 자, 엿을 파는 자, 거짓말을 파는 자. 누가 방금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렸는지 금세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객잔 이층 창문이 삐걱였다. 진소백이 고개를 들자 유란이 어둠 속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소백은 다시 거리 쪽을 보았다.
관문 도시의 소리는 여전히 컸다. 웃음, 흥정, 욕설, 수레바퀴,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그 모든 소리 사이로 방금 들은 세 글자가 아직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진소백.
그는 자기 이름이 이렇게 낯설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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