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묻는 자
객잔 안은 아직 낮의 먼지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삶은 국수 냄새와 젖은 장작 냄새가 뒤섞여 들보 아래에 낮게 깔렸다. 관문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끼고 앉아 국물에 얼굴을 묻었고, 짐꾼들은 벽가에 기대 발목을 문질렀다. 문이 열릴 때마다 바깥 흙먼지가 훅 밀려 들어왔다가, 탁자 사이를 지나며 사람들의 옷자락에 묻었다.
진소백은 그 먼지 속에서 한 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장사치 행색의 사내였다. 해진 포대 자루를 무릎 옆에 세워 두고, 닳은 소매 끝으로 그릇 가장자리를 훔치고 있었다. 얼마 전 객잔 앞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이름을 흘렸던 자. 진소백이라는 이름을, 물건값을 묻듯이 입에 올렸던 자.
진소백은 곧장 다가가지 않았다. 탁자 두 개 너머에서 술을 따르는 점소이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점소이가 몸으로 사내의 오른편을 가린 순간, 그는 왼편으로 돌아 들어갔다.
손이 사내의 어깨에 닿았다.
사내가 흠칫했다. 젓가락 끝에 걸려 있던 국수가 그릇 속으로 미끄러졌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가 먼저 진소백의 얼굴을 훑고, 이어 그의 허리춤과 손을 보았다.
“누구시오?”
“방금 내 이름을 물었지.”
“이름?”
사내는 너무 빨리 되물었다. 놀라서가 아니라, 이미 마련해 둔 말처럼.
진소백은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진소백. 그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근처 탁자의 두 사람이 말을 멈추었다. 그릇 긁는 소리가 잠깐 비었다. 사내는 그 빈틈을 알아차린 듯 억지로 웃음을 만들었다.
“아이구, 손님. 길에서 장사하다 보면 이름이야 많이 묻지 않소. 물건 맡긴 사람 이름일 수도 있고, 빚진 사람 이름일 수도 있고.”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다.”
“그럼 무엇을 묻는 거요?”
진소백은 사내의 눈을 보았다. 사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하지 않으려 애쓰는 눈이었다. 눈꺼풀이 한 번, 너무 느리게 내려갔다 올라왔다.
“누가 시켰지?”
사내는 웃음을 키웠다.
“참 별일이오. 나는 자루 하나 메고 관문 넘는 사람인데, 누가 뭘 시킨단 말이오?”
“장사치라면서 물건을 팔 생각이 없더군.”
“오늘은 물건보다 사람을 찾는 날이었나 보지.”
말을 내뱉고 나서 사내의 입가가 굳었다.
진소백의 손끝이 어깨뼈 위로 파고들었다. 사내는 이를 악물었지만 신음은 삼켰다.
“사람을 찾는 날?”
“말이 그렇다는 거요.”
“누구를 찾았지?”
“여러 사람.”
“그중에 왜 내 이름이 들어갔지?”
사내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객잔 안의 시선이 조금씩 모이고 있었다. 유란은 문가 쪽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그녀는 끼어들지 않았다. 다만 객잔의 안쪽과 바깥쪽, 점소이와 주인의 위치까지 한눈에 재듯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 여기서 이러면 서로 곤란하오.”
“곤란한 건 네가 먼저 만들었다.”
“내가 손님 이름을 훔친 것도 아니고, 칼을 댄 것도 아니오. 이름 한번 물었다고 사람을 잡아끄는 법이 어디 있소?”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지?”
사내가 코로 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이름이 한둘이오? 진씨도 많고, 소백이라는 이름도 없지는 않겠지.”
“거짓말을 할 거면 늦게 해라.”
진소백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사내의 팔이 탁자 위로 끌려 나왔다. 손등에는 장사치에게 어울리지 않는 굳은살이 있었다. 짐을 오래 멘 손이 아니라, 짧은 칼자루를 오래 쥔 손에 가까웠다. 손톱 밑은 깨끗했다. 포대 자루를 굴리고 다닌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사내도 그것을 알아차린 듯 손을 움켜쥐었다.
“놓으시오.”
“네 물건은 어디 있지?”
“자루 안에 있소.”
“열어 봐.”
“남의 장사 밑천을 왜 보려 하오?”
“그럼 내가 열지.”
진소백이 포대 자루 쪽으로 손을 뻗자, 사내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을 긁었다. 그 짧은 순간 사내의 왼손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진소백은 손목을 쳤다.
탁.
작은 쇳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칼이라기보다 숨겨 찌르기 좋은 송곳 같은 물건이었다. 객잔 안에서 누군가 욕을 뱉었다. 점소이가 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진소백은 사내의 손목을 꺾어 탁자 위에 눌렀다.
“장사치가 송곳도 파나?”
사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관문 길이 험하니 몸 지킬 물건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다니오.”
“그 물건으로 이름을 묻나?”
“손님도 칼을 차고 있지 않소.”
진소백은 대답 대신 포대 자루를 발끝으로 당겼다. 자루 입구는 묶여 있었지만 매듭이 느슨했다. 안에는 싸구려 비단 조각 몇 장과 나무 실패, 낡은 향낭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장사치의 물건처럼 보이게 채워 넣은 것들. 그러나 깊이가 없었다. 자루 아래쪽은 헝겊으로 부풀려져 있었다.
“준비는 했군.”
사내는 입술을 핥았다.
“듣고 싶은 대답을 정해 놓고 묻는군.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소.”
“누가 내 이름을 찾느냐.”
“모른다 했소.”
“네가 조금 전엔 여러 사람을 찾는 날이라고 했다.”
“말실수였소.”
“장사치가 이름을 잘못 물을 수도 있고, 말실수도 할 수 있고, 품속에 송곳도 있을 수 있고, 자루엔 물건 흉내만 있을 수도 있군.”
진소백은 사내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그 많은 우연이 다 오늘 한 사람에게 모였나?”
사내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객잔 주인이 조심스레 다가오려 하자, 유란이 손가락 두 개를 가볍게 들었다. 멈추라는 뜻도 아니고, 기다리라는 뜻도 아닌 애매한 손짓이었다. 그런데 주인은 멈췄다. 점소이도 더 다가오지 않았다.
유란이 말했다.
“여기서는 그만하시지요.”
진소백은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놓아주라고?”
“아니요. 장소를 바꾸자는 말입니다. 이 객잔엔 귀가 너무 많습니다.”
사내가 곧장 말했다.
“나는 갈 곳 없소.”
유란이 그를 보았다.
“그럼 여기서 관아를 부를까요? 송곳은 바닥에 있고, 장사 물건은 비어 있고, 방금 전 이분 이름을 캐고 다닌 걸 들은 이도 있습니다. 관아가 진상을 잘 가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 관문은 못 넘겠지요.”
사내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진소백은 그 변화를 보았다. 협박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란의 말은 협박처럼 들리지 않았다. 선택지를 눈앞에 차분히 놓는 말이었다. 사내가 어느 쪽을 더 두려워하는지, 듣는 사람들에게까지 알리지 않고 재는 말.
그는 사내의 팔을 놓았다.
“일어나.”
사내는 손목을 감싸 쥐었다.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바닥의 송곳을 줍지 않았다. 유란이 그것을 발끝으로 밀어 탁자 다리 밑에 넣었다.
셋은 객잔 뒤쪽 문으로 나갔다.
뒤뜰에는 빈 술독과 젖은 장작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 너머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유란은 먼저 골목을 살폈다. 양쪽 담은 높았고, 위로 빨랫줄이 걸려 있었다. 바람이 통하지 않아 낮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사내는 골목 한가운데서 멈췄다.
“이제 되었소? 더 끌고 가면 정말 소리 지르겠소.”
진소백이 한 걸음 다가서자 유란이 손을 살짝 들어 막았다.
“소리 지르셔도 됩니다.”
사내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뭐요?”
“객잔 안 사람들은 방금 일을 봤습니다. 소리가 나면 이쪽으로 몰려오겠지요. 그러면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쪽이 원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유란은 담장에 등을 기대지 않았다. 달아날 길도 막지 않았다. 사내가 뛰려면 뛸 수 있는 만큼의 틈을 남겨 두었다. 진소백은 그것이 의아했다. 그는 상대를 붙들 때 틈을 줄 생각부터 하지 않았다.
유란이 말했다.
“이름을 묻는 일은 싸구려 일이 아닙니다.”
사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특히 관문 도시에서요. 지나가는 사람은 많고, 이름은 쉽게 흩어집니다. 헛이름도 많고, 남의 이름을 빌리는 사람도 많지요. 그런 곳에서 한 이름을 골라 묻는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아주 멍청하거나, 이미 절반은 알고 있거나.”
“나는 멍청한 장사치요.”
“그렇다면 품속의 송곳은 너무 날이 좋았습니다.”
사내의 턱이 굳었다.
유란은 말을 서두르지 않았다.
“당신이 배후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압니다.”
그 한마디에 사내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진소백도 똑똑히 보았다. 유란은 모른다는 말과 숨긴다는 말 사이의 아주 얇은 틈을 찔렀다.
“배후라니. 참으로 말이 거창하오.”
“좋습니다. 배후라는 말이 싫으면 고용주라고 하지요. 그것도 싫으면 물건값을 치른 사람.”
“아무도 내게 값을 치르지 않았소.”
“그럼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까?”
사내는 숨을 멈췄다.
진소백은 유란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맞혔다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다음 말을 고르는 사람처럼 조용했다.
“아니면 관문 통행을 보장해 주었습니까?”
“…….”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안전을 약속했습니까?”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유란은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그쪽 사정을 캐는 데 관심 없습니다. 다만 이분의 이름을 왜 묻고 다녔는지 알아야 합니다.”
“모른다 했소.”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말하는데?”
“처음엔 ‘누구냐’고 묻고, 다음엔 ‘잘못 들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둘 다 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여기서 이러면 서로 곤란하다’고 했지요. 서로라 했습니다. 당신 혼자 곤란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내의 손가락이 허벅지 옆에서 접혔다 펴졌다.
유란은 낮게 말했다.
“누가 그 이름을 찾고 있습니까?”
“말할 수 없소.”
진소백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가라앉았다. 모른다는 말이 아니었다. 말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유란이 바로 따라붙었다.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겁니까, 그 이름이 어디서 나오는지 찾는 겁니까?”
사내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하시오.”
진소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내는 그를 보지 않았다. 유란이 대신 말했다.
“그분이 묻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당신에게는 오히려 편할 겁니다.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배후의 이름은 묻지 않겠습니다.”
사내가 짧게 웃었다.
“참 친절하군.”
“친절한 쪽으로 보입니까?”
유란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사내는 한동안 담장 위쪽을 보았다. 빨랫줄에 걸린 낡은 천이 느리게 흔들렸다. 골목 밖으로 수레바퀴가 돌을 밟는 소리가 지나갔다.
“사람을 찾는 게 아니오.”
진소백은 숨을 들이켰다.
유란이 물었다.
“그럼?”
사내는 말끝을 삼켰다. 다시 발뺌할 길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한 발을 내딛은 뒤였다.
“이름이오.”
“진소백이라는 이름.”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름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찾는 겁니까?”
“나는 전달받은 대로 물었을 뿐이오.”
“어디서?”
“말할 수 없소.”
“누구에게?”
“말할 수 없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묻고 있습니까?”
사내가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진소백은 그의 침묵이 대답보다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유란은 다른 쪽으로 물었다.
“당신 혼자 맡은 구역이 이 관문입니까?”
사내가 눈을 감았다 떴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소.”
“그렇군요. 그럼 당신 혼자 우연히 이 관문에서만 묻는 일이 아닙니다.”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말을 잘 돌리는군.”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진소백은 그녀의 옆모습을 보았다. 객잔에서 그는 사내의 어깨를 눌렀고, 손목을 꺾었고, 송곳을 떨구게 했다. 얻은 것은 발뺌뿐이었다. 유란은 한 걸음도 좁히지 않고 사내의 입 안에서 말을 끌어냈다. 협박도 아니었다. 은전을 내민 것도 아니었다. 다만 상대가 숨기려는 말의 둘레를 돌아가며, 빠져나갈 문을 하나씩 닫았다.
그 방식은 칼과 달랐다. 칼은 닿으면 베지만, 말은 닿기 전에 이미 사람을 움직였다.
유란이 다시 물었다.
“그 이름을 대면 어떻게 됩니까?”
“모르오.”
“거짓말은 줄입시다.”
사내의 얼굴에 피로가 스쳤다.
“정말 모르오. 우리는 묻기만 하오. 들으면 알리고, 아니면 지나가고. 그뿐이오.”
“어디로 알립니까?”
“말할 수 없소.”
“어떤 표식입니까? 종이? 사람? 객잔 벽? 향낭?”
사내의 시선이 아주 짧게 자기 포대 자루가 있는 쪽으로 돌아가려다 멈췄다. 자루는 객잔 안에 있었다. 진소백은 그 짧은 시선만으로도 충분했다.
“자루 안에 있었군.”
사내가 낮게 욕설을 삼켰다.
유란은 진소백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이미 옮겼을 수도 있습니다. 안에 있던 물건이 전부 장식은 아니었겠지요.”
진소백은 객잔 쪽으로 돌아서려 했다.
사내가 다급히 말했다.
“지금 가 봐도 없을 거요.”
진소백이 멈췄다.
“누가 가져갔지?”
“모르오.”
“또 모른다?”
“정말이오. 내가 오래 붙들리면 누군가 챙기게 되어 있소. 그게 전부요.”
유란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이쪽이 묻는 것도 이미 알려졌겠군요.”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골목의 열기가 갑자기 좁아진 듯했다. 진소백은 객잔의 벽 너머를 떠올렸다. 사람들. 점소이. 주인. 술독을 나르던 어린 일꾼. 누구든 포대 자루에 손을 댈 수 있었다. 누구든 그 안의 물건을 빼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이미 그랬다.
그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진소백은 천천히 물었다.
“내 이름을 어디서 들었나.”
사내는 이번에는 쉽게 웃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름을 받았소.”
“어떤 이름이라고?”
“진소백.”
“한자는?”
사내의 시선이 진소백의 얼굴에 박혔다. 그 눈빛 때문에 진소백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사내는 한자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입을 열지 않았다.
유란이 끼어들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소백이 그녀를 보았다.
유란은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말하게 하면 당신은 여기서 죽을 생각을 할 겁니다. 맞습니까?”
사내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진소백은 말문이 막혔다. 이름의 한자를 묻는 일이 왜 사람을 죽음 쪽으로 밀어야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내의 얼굴은 이미 답을 하고 있었다.
무덤 앞에서 보았던 글자가 떠올랐다.
낡은 돌에 새겨진 이름. 흙먼지와 이끼 사이에서, 분명히 그와 같은 소리를 내던 글자. 그때도 이상했지만, 이상한 채로 밀어 두었다. 세상에는 같은 이름이 있을 수 있다고. 죽은 이의 이름이 산 사람의 이름과 겹칠 수도 있다고. 우연이라는 말은 때로 너무 편했다.
이제 그 편한 말이 손안에서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유란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그 이름을 찾는 쪽은, 이분이 그 이름의 주인이라고 확신합니까?”
사내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확인하는 중이오.”
“무엇으로?”
“이름을 대는 자의 반응.”
진소백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사내가 말했다.
“자기 이름이면 돌아보겠지. 숨기려는 이름이면 굳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이름이면 지나가겠지. 우리는 그걸 보라고 들었소.”
“그래서 봤나?”
진소백이 물었다.
사내는 그를 바라보았다.
“보았소.”
“무엇을?”
“손님은 돌아봤고, 굳었소.”
진소백은 더 묻지 못했다.
유란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골목 끝으로 나가는 길이 열렸다.
“가십시오.”
진소백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냥 보내?”
“여기서 더 붙들면 저 사람보다 뒤에 있는 쪽이 먼저 움직입니다. 지금은 그게 더 손해입니다.”
사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유란을 보았다.
“정말 보내는 거요?”
“대신 하나는 두고 가십시오.”
“나는 가진 게 없소.”
“당신이 살고 싶어서 끝까지 삼킨 말 말고, 삼켜도 소용없는 말이 있습니다.”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란은 덧붙였다.
“이분이 오늘 밤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요. 그건 배후의 이름이 아닙니다.”
사내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골목 밖에서 말 울음소리가 났다. 멀리 관문 쪽의 북소리가 한 번 울렸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문을 조심하시오.”
그가 말했다.
진소백이 물었다.
“관문?”
“모든 문.”
“장난하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는 문, 나가는 문, 묵는 문. 이름은 문에서 잘 잡히오. 사람은 문 앞에서 멈추니까.”
유란은 그 말을 곱씹는 듯 잠깐 눈을 내렸다.
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이제 됐소?”
진소백은 그를 붙잡고 싶었다. 붙잡아 담에 밀어붙이고, 더 묻게 만들고 싶었다. 누가 이름을 찾는지. 왜 찾는지. 무덤의 그 이름과 무엇이 이어지는지. 그러나 사내의 얼굴에는 더 캐면 부러질 사람의 표정이 있었다. 부러지기 전에 말할 사람이 아니라, 부러져도 입을 닫을 사람이었다.
유란이 낮게 말했다.
“가십시오. 돌아보지 말고.”
사내는 두 걸음 물러난 뒤 몸을 돌렸다. 골목 끝으로 걸어가던 그의 어깨가 한 번 흔들렸다. 달아나는 걸음은 아니었다. 오래 참은 숨을 겨우 내쉬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골목 끝에 다다랐을 때, 사내가 멈췄다.
진소백의 손이 저도 모르게 빈 허리춤을 더듬었다. 잡을 것은 없었다.
사내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옆얼굴만 조금 보일 만큼 고개를 틀었다.
“그 이름은…… 위험하오.”
목소리는 낮았지만 골목 안에서는 또렷했다.
“함부로 대지 마시오.”
그리고 사내는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진소백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담장 위 빨랫줄의 천이 바람도 없이 조금씩 흔들렸다. 객잔 안에서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났고, 곧 그 웃음은 다른 말소리에 묻혔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굴러갔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더 이상 예전의 이름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 스스로 적어 넣었던 이름. 길에서 대답하던 이름. 누가 물으면 아무 생각 없이 내주던 이름. 그것이 이제 문 앞에서 사람을 멈추게 하고, 모르는 자의 눈을 흔들게 하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신호를 보내는 물건이 되어 있었다.
진소백은 손바닥을 폈다. 아까 사내의 손목을 누를 때 묻은 땀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손을 옷자락에 문질렀지만, 감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유란이 객잔 쪽을 보며 말했다.
“자루는 이미 비었을 겁니다.”
“그래도 확인해야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진소백은 그녀를 보았다.
“너는 언제부터 알았지?”
“무엇을요?”
“저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유란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골목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은 뒤에야 말했다.
“처음부터는 아닙니다. 하지만 객잔에서 손목을 잡혔을 때, 저 사람은 자기 몸보다 주변을 먼저 봤습니다. 도망갈 길이 아니라, 누가 보고 있는지를요.”
“그래서?”
“혼자 일하는 사람은 들키면 빠져나갈 길을 찾습니다. 누군가에게 보고해야 하는 사람은 들킨 사실이 어떻게 보일지를 먼저 걱정합니다.”
진소백은 그 말을 천천히 삼켰다.
“나는 그걸 못 봤다.”
“당신은 송곳을 봤습니다.”
“그건 누구나 볼 수 있어.”
“모두가 보지는 못합니다.”
유란의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실을 제자리에 놓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진소백은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사라진 모퉁이 뒤에는 다시 큰길이 있고, 관문으로 향하는 사람들 틈이 있을 것이다. 그 틈 어딘가에 방금 그의 이름을 들은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혹은 이미 없을지도 몰랐다.
“그 이름이 왜 위험하지?”
말은 유란에게 묻는 것처럼 나왔지만,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유란도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답처럼 골목에 내려앉았다. 진소백은 무덤 앞의 차가운 돌을 떠올렸다. 같은 소리를 내는 이름. 그 아래 묻힌 죽음. 그리고 오늘, 살아 있는 그의 뒤를 따라붙은 눈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불러 보았다.
진소백.
소리는 익숙했다. 그런데 그 익숙한 소리 안쪽에, 알지 못하는 무게가 걸려 있었다.
이 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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