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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 28/30

첫 밤의 온기

비가 올 듯 말 듯한 하늘 아래, 관문 도시의 객잔은 해가 지기 전부터 들끓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젖은 짚신 냄새와 삶은 고기 냄새, 오래 닦은 탁자에서 배어 나온 쉰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덮쳤다. 진소백은 먼저 사람들의 손을 보았다. 술잔을 든 손, 젓가락을 쥔 손, 허리춤 아래로 내려간 손.

칼을 찬 자가 셋. 표국 표식을 단 무인이 넷. 문가에는 관문 아전 둘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고, 그 곁 탁자 밑에는 곤봉이 반쯤 드러나 있었다.

진소백의 등 뒤로 유란이 들어서자, 문가의 사내 둘이 고개를 들었다. 하나는 눈만 굴렸고, 하나는 웃었다. 웃음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유란이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사내는 곧 술잔으로 입을 가렸다.

유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빈자리를 골랐다.

“저기.”

그녀가 구석 탁자를 가리켰다. 벽을 등질 수 있고, 창은 가깝지만 문에서는 멀었다.

진소백은 잠깐 망설였다.

“문에서 멀다.”

“그러니 덜 밟히지.”

“나가야 할 때 늦다.”

“앉자마자 나갈 생각이면 객잔이 아니라 마구간으로 가야지.”

그는 대답하지 않고 먼저 탁자 주변을 살폈다. 벽에는 오래된 칼자국이 두 줄 나 있었고, 탁자 밑에는 깨진 술잔 조각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점소이가 치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치우다 말 만큼 손님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유란이 먼저 앉았다. 진소백은 등을 벽 쪽에 둘 수 있는 자리를 택했다.

옆 탁자에서는 표국 무인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푸른 바탕에 붉은 산 모양을 수놓은 어깨띠. 진소백은 어느 표국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앉은 탁자만 넓게 비어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행상 둘이 그 옆자리를 보다가, 눈치를 보고는 주방 문 근처 좁은 자리로 밀려났다.

힘 있는 자가 넓게 앉고, 힘없는 자가 냄새 나는 쪽으로 밀려난다.

강호의 규칙은 의원방의 약장보다 단순했다.

점소이가 다가왔다. 허리는 낮았지만 눈은 바빴다.

“무얼 드릴까요?”

진소백은 품속의 동전을 손끝으로 헤아렸다. 길은 아직 길고, 관문을 넘으면 값이 더 뛴다는 말을 낮부터 들었다.

“국수 두 그릇.”

유란이 곧장 덧붙였다.

“고기 한 접시도.”

진소백이 그녀를 보았다.

“고기는 비싸다.”

“비싼 걸 알아서 시켰네.”

“우리는 길을 가야 한다.”

“그러니 먹어야지. 굶은 다리는 관문 앞에서 제일 먼저 꺾이네.”

점소이는 두 사람 눈치를 살피다가 붓을 들었다. 진소백은 다시 물었다.

“고기는 반 접시가 되나?”

점소이가 난처하게 웃었다.

“반 접시는 안 팝니다.”

유란이 말했다.

“그럼 한 접시를 가져오고, 반은 우리에게 외상으로 달아 두게.”

점소이는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커지기도 전에 옆 탁자 표국 무인 하나가 잔을 탁 내려놓았다.

“시끄럽다.”

객잔 안의 소리가 잠시 낮아졌다. 점소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유란은 그쪽을 보지 않고 젓가락통을 바로 세웠다.

“그럼 고기 한 접시. 빨리 주게.”

점소이가 허둥지둥 적고 물러났다. 진소백은 옆 탁자 무인의 손등을 보았다. 굳은살이 두껍고, 손목에 낡은 붉은 끈이 감겨 있었다. 거칠게 움직이는 자였다. 술이 들어간 뒤에는 더 거칠어질 터였다.

“괜히 말이 길었다.”

진소백이 낮게 말했다.

유란은 물잔을 들어 입술만 적셨다.

“고기값보다 무인의 귀가 더 비싸군.”

“귀가 아니라 체면이다.”

“둘 다 건드리면 피곤한 물건이지.”

그녀는 가볍게 말했지만, 진소백은 그 웃음 아래로 객잔 안의 결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누구를 피하는지, 누가 눈을 내리는지, 누가 허리춤에 손을 얹는지. 의원방에서는 맥이 먼저 말하고 환자가 나중에 말했다. 이곳에서는 손과 자리와 침묵이 먼저 말했다.

국수가 나왔다. 김이 낮게 피어올랐고, 파 몇 조각이 얇게 떠 있었다. 진소백은 그릇을 당겼다. 유란은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가늘게 떴다.

“싱겁네.”

“소금은 아껴야 한다.”

“객잔 주인이?”

“우리 몸이.”

유란이 젓가락을 멈추었다. 웃음이 터질 듯하다가, 옆 탁자를 힐끗 보더니 입가에서만 사라졌다.

“진 공자는 정말 세상 모든 일을 약방 말투로 받는군.”

“약방 말투가 뭔지 모르겠다.”

“아프지는 않은데 듣고 있으면 침을 맞는 기분이 드는 말.”

진소백은 국수를 삼켰다.

“침은 제대로 놓으면 덜 아프다.”

“그 말까지 포함해서 그렇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점소이가 고기 접시를 가져왔다. 얇게 썬 삶은 고기 위에 파와 장이 얹혀 있었다. 유란은 기다렸다는 듯 한 점을 집어 자기 그릇에 올렸고, 진소백은 젓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왜 안 먹나?”

“네가 시켰다.”

“그러니 같이 먹어야지.”

그녀는 고기 두 점을 그의 국수 위에 올렸다.

“이미 장이 묻었네. 거절하면 국수 국물도 서운할 걸세.”

“국물은 서운해하지 않는다.”

“진 공자와 오래 있으면 세상의 많은 것이 감정을 잃겠군.”

진소백은 고기를 보았다. 장 냄새가 국물 위에 퍼졌다. 그는 결국 먹었다. 짠맛과 기름맛이 혀에 붙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배가 비어 있었다.

유란이 물었다.

“독을 탔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네가 먼저 먹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독에 강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먹었나?”

진소백은 국물 한 모금을 마셨다.

“배가 고팠다.”

유란은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고기를 천천히 씹었다. 진소백은 그녀의 젓가락이 급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길 위에서는 늘 먼저 움직이고 먼저 길을 읽는 사람이, 밥 앞에서는 한 점마다 멈추었다. 쫓기는 사람의 속도는 아니었다. 혹은 오래 쫓겨 본 사람의 속도일지도 몰랐다.

“왜 보나?”

“음식을 급히 먹지 않는다.”

“그게 이상한가?”

“쫓기는 사람은 보통 급히 먹는다.”

유란의 젓가락 끝이 아주 잠깐 허공에 멈추었다. 곧장 고기를 집었다.

“밥까지 쫓기듯 먹으면 쫓는 쪽이 좋아하지.”

진소백은 그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객잔 안의 소음은 다시 차올랐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 주방에서 칼질하는 소리, 장부를 넘기던 주인이 손님과 실랑이하는 소리. 관문 도시의 말들은 모두 돈과 길과 목숨에 붙어 있었다.

“새벽 첫 북 울리기 전에 줄 서야 한다더라.”

“북문 쪽은 오늘도 세 명 붙잡혔다지.”

“관문패가 있어도 은자 없으면 못 지난다더군.”

“개방 놈들은 벌써 담 밑에 깔렸다. 누가 지나가는지 다 센다나.”

“노칠이 또 들쑤신다며?”

그 이름이 튀어나왔을 때, 진소백의 젓가락이 멈췄다.

말한 이는 주방 문 가까이 앉은 중년 상인이었다. 그 앞에 앉은 사내가 급히 손을 저었다.

“입 조심해. 그쪽 이름을 객잔 한복판에서 왜 꺼내?”

“이름도 아니고 별호인데 뭘.”

“별호든 뭐든, 거지 귀가 제일 멀리 간다.”

그 말에 문가 쪽에서 누군가 낄낄거렸다. 진소백은 시선을 돌렸다. 문간 그림자 아래, 누더기를 걸친 사내 하나가 술잔 대신 빈 사발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손님인지 거지인지 구분이 애매했다. 객잔 주인도 내쫓지 않았다. 그의 허리에는 매듭진 끈이 여러 가닥 달려 있었다.

개방.

진소백은 낮에 장터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떡을 팔던 노파가 손님에게 짜증을 내며 흘린 이름. 노칠인지 노팔인지, 어쩌면 제대로 들은 것조차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들렸다. 그것도 사람들이 입을 낮추는 이름으로.

그는 무심한 척 국수를 저었다.

유란이 낮게 말했다.

“그릇에 죄가 있나?”

“뭐가.”

“국수가 너무 뒤집히고 있네.”

그는 젓가락을 멈추었다. 유란의 눈은 그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

“노칠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나도 들었네.”

“개방 쪽 사람인가?”

“객잔에서 그런 식으로 묻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네.”

유란의 목소리는 전보다 낮았다. 장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끝이 가볍지 않았다.

진소백은 입을 다물었다. 문가의 누더기 사내가 사발을 들어 물을 마셨다. 그 눈이 이쪽으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소백은 이미 자기 이름이 누군가에게 닿을 때마다 공기가 바뀌는 것을 겪었다. 노칠이라는 이름도 그럴 수 있었다.

옆 탁자의 표국 무인이 고기 접시를 비우며 말했다.

“관문 넘어 낙양 길은 요즘 더럽다더군. 이름 적힌 놈들이 움직인다나.”

다른 무인이 코웃음을 쳤다.

“낙양은 늘 더러웠어. 깨끗한 길 찾으려면 산속 절에나 가야지.”

낙양.

진소백은 그 지명을 조용히 눌러 삼켰다. 이름과 지명과 표식들이 한꺼번에 들이밀 때마다, 그는 병자를 앞에 두고도 병명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순간을 떠올렸다. 급히 손대면 상처가 벌어졌다. 그렇다고 손을 떼고 있으면 열이 올라 숨이 막혔다.

“또 무거운 얼굴.”

유란이 마지막 고기 한 점을 집었다.

“얼굴이 무거워 보이나?”

“국수 그릇보다.”

“그릇은 비어 간다.”

“그럼 얼굴도 비우게.”

“어떻게.”

유란은 고기를 잠시 보더니 그의 그릇에 놓았다.

“먹으면 조금 덜 무거울지도 모르지.”

“네가 먹어라.”

“이미 건넜네.”

“다시 가져가도 된다.”

“남의 그릇에 들어간 건 함부로 빼는 게 아니네. 강호도 밥상도 그 정도 예의는 있지.”

진소백은 그 고기를 먹었다. 유란은 빈 접시를 자기 쪽으로 당겨 남은 파를 젓가락 끝으로 모았다.

그날 밤 방은 하나뿐이었다.

객잔 주인은 “오늘은 관문 닫히기 전부터 방이 찼소”라고 말했다. 진소백이 마구간을 묻자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마구간도 표국 말이 차지했소. 사람 하나 더 넣었다가 말이 놀라면 내가 배상해야 하오. 말값이 사람값보다 비싼 날도 있소.”

말을 마친 주인의 시선이 진소백의 낡은 봇짐과 유란의 빈 손 사이를 오갔다. 가진 것 없는 길손이라는 판단이 얼굴에 드러났다. 유란이 값을 깎으려 했지만, 주인은 “이미 뒤뜰 쪽 방값이오”라고 잘랐다.

방에 들어서자 낮은 침상 하나, 낡은 탁자, 물동이, 병풍이 전부였다. 창은 뒤뜰을 향했고, 문고리는 오래 써 헐거웠다. 벽 너머에서는 옆방 사내들의 웃음소리와 낮은 대화가 들렸다. 표국 무인들이 쓰는 방인지, 칼집이 바닥에 닿는 둔탁한 소리가 간간이 섞였다.

진소백은 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나는 바닥에서 잔다.”

유란이 방 안을 둘러보며 대꾸했다.

“물어본 적 없네.”

“미리 말하는 것이다.”

“그럼 나도 미리 말하지. 나는 침상에서 잔다.”

“그건 알고 있다.”

“잘 아는군.”

진소백은 봇짐을 내려놓고 문고리를 확인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는 힘을 조금 달리 주었다. 나무가 얇게 삐걱거렸다. 빗장이 걸리긴 했지만, 밖에서 억지로 밀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유란은 물동이에 손을 씻으며 말했다.

“문고리가 그렇게 약한가?”

“헐겁다.”

“몇 번 확인하면 단단해지나?”

“단단해지지는 않는다. 어디가 약한지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유란이 웃지 않았다. 그녀는 젖은 손을 털고 병풍 뒤로 들어갔다.

“보지 말게.”

“안 본다.”

“너무 빨리 대답하면 보고 싶었다는 말처럼 들리네.”

“보지 않았다.”

“이번엔 늦었네.”

진소백은 입을 다물었다. 병풍 뒤에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는 탁자 앞에 앉아 품속의 종이를 꺼냈다. 고진명이 남긴 종이와, 그동안 모아 온 이름들이 적힌 명단이었다.

그는 종이를 펴기 전에 먼저 방의 소리를 들었다. 물동이의 물방울, 침상 다리의 삐걱임, 벽 너머 웃음소리. 그리고 복도 쪽에서 발이 멈추었다가 지나가는 소리. 객잔은 쉬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자들이 서로를 훔쳐보는 곳이었다.

종이가 펴졌다. 오래 접힌 자국마다 손때가 있었다. 고진명의 글씨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어떤 획은 급했고, 어떤 획은 오래 눌러 쓴 듯 무거웠다.

진소백은 명단의 이름들을 눈으로 짚었다.

스물셋.

그 수는 이미 머릿속에 붙어 있었다. 하나하나가 사람의 이름인지, 별호인지, 문파의 흔적인지 아직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쪽에는 眞少白이 있었다. 또 다른 자리에는 已 표식이 작게 붙어 있었다. 그는 그 글자를 오래 보지 않으려 했다. 오래 볼수록 뜻이 생기는 것 같았고, 뜻이 생기면 그 뜻이 자꾸 앞서 나갔다.

하나가 많아.

언젠가 들은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의원이 잘못된 약재 하나를 짚어 내듯, 종이 위의 어긋남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글자는 맥처럼 뛰지 않았고, 종이는 열을 내지 않았다.

낮에 들은 이름이 다시 걸렸다.

노칠.

사람 이름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자리, 혹은 줄 안의 번호처럼 들렸다. 명단 한 구석의 흐린 글자와 객잔에서 오간 낮은 말이 서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다만 상처를 눌렀을 때 환자가 눈꺼풀을 떨듯, 마음 한쪽이 반응했다.

병풍 뒤에서 유란이 나왔다. 겉옷을 느슨히 걸친 채였다. 젖은 손을 수건에 닦으며 탁자 쪽으로 다가왔다.

“눈이 종이에 붙었네.”

진소백은 종이를 살짝 접었다.

“가까이 오지 마라.”

유란은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알겠네. 귀한 종이와 나는 오늘도 사이가 멀군.”

“글자를 보았나?”

“종이인 건 봤지. 글자는 못 봤네.”

그녀는 더 다가오지 않았다. 발끝은 병풍 그림자 안에 있었다. 진소백은 종이를 완전히 덮지 않고 다시 내려다보았다.

“명단 중 하나가…… 개방 쪽과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낮에도 들었고, 방금 아래에서도 들었다. 노칠이라는 이름.”

유란은 수건을 접어 물동이 가장자리에 걸었다.

“개방엔 숫자가 붙은 별호가 많다더군.”

“아는가?”

“객잔에 오래 앉아 있으면 모르는 것도 많이 듣게 되지.”

“노칠을 아나?”

“이름은 들은 적 있네. 또는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진소백은 그녀를 보았다.

“확실하지 않게 말한다.”

“확실한 척하면 네가 더 물을 테니까.”

“확실하지 않으면 더 묻는다.”

“그러니 둘 다 막히는군.”

그녀는 침상 끝에 앉았다. 발끝으로 바닥의 먼지를 조금 밀었다. 벽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다시 커졌다가 낮아졌다.

“개방 쪽을 좇겠다는 건가?”

“그래야 할 것 같다.”

“왜?”

진소백은 고진명의 종이를 접었다. 접힌 선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걸리는 이름을 그냥 두면 다음 이름도 흐려진다.”

“의원답군.”

“무슨 뜻이지?”

“상처가 곪기 전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뜻.”

진소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은 맞았다. 다만 상처가 제 것인지 남의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유란이 말했다.

“문제는 그 상처가 사람인지 덫인지 모른다는 거네.”

“그래도 봐야 한다.”

“그 말도 진 공자답네.”

“내가 어떤데.”

유란은 잠시 그를 보다가 말했다.

“닫힌 문 앞에서 문고리부터 살피는 사람.”

진소백은 문 쪽을 보았다.

“그건 틀리지 않다.”

“그래서 살아남기도 하고, 늦기도 하지.”

벽 너머에서 술잔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욕설과 웃음이 뒤섞였다. 이어 누군가가 낮게 말했다. 말뜻은 들리지 않았지만, 소리가 벽을 타고 얇게 긁혔다.

진소백은 종이를 접어 품속에 넣었다. 유란은 신을 벗고 침상에 올라앉았다. 머리끈을 풀자 머리카락이 어깨로 흘러내렸다. 길 위에서는 늘 묶여 있던 것이 작은 방 안에서 풀리자, 진소백은 잠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또 보네.”

그는 곧장 눈을 내렸다.

“확인한 것이다.”

“무엇을?”

“네가 자는지.”

“눈 뜨고 있는데?”

“그러니 아직 안 자는 것을 확인했다.”

유란은 베개를 손으로 두드렸다.

“내가 자는 동안 문고리를 여섯 번 확인하지는 말게.”

“세 번이면 충분하다.”

“아까 이미 세 번 했잖나.”

“시간이 지났다.”

“문고리도 늙는군.”

진소백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아까 복도에서 멈추었던 발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아래층에서 노칠의 이름이 나왔고, 낙양이라는 말도 들렸다. 자기 이름이 언제 어디서 흘러나올지 모르는 길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봇짐을 손이 닿는 곳에 당겨 두었다. 그 안에는 부러진 검이 있었다. 고진명의 유품이었다. 무기로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쓸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 차가운 무게가 곁에 있으면, 지나온 길이 완전히 흩어지지는 않는 듯했다.

방 안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옆방의 소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누가 코를 골기 시작했고, 누가 낮게 기침했다. 복도에서는 점소이가 마지막 물동이를 치우는 소리가 지나갔다.

진소백은 등잔불을 낮추고 벽에 기대앉았다. 바닥은 차가웠다. 얇은 이불을 무릎까지 끌어올렸지만 어깨 쪽으로 한기가 올라왔다. 침상 쪽에서 유란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무언가가 그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얇은 겉옷이었다.

진소백은 고개를 들었다. 유란은 벽 쪽을 보고 누워 있었다.

“이건 네 옷이다.”

“아네.”

“왜 줬지?”

“바닥이 추워 보이니.”

“너는?”

“침상은 바닥보다 낫네.”

진소백은 겉옷을 들고 망설였다.

“돌려주겠다.”

“그럼 내가 다시 던질 걸세.”

“계속 그러면 옷이 구겨진다.”

“그럼 그냥 덮게.”

그는 더 버티지 않았다. 겉옷을 어깨에 걸쳤다. 길 먼지와 장터 연기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고맙다.”

유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든 척하는지, 정말 눈을 감았는지 알 수 없었다. 진소백은 등잔불을 더 낮췄다. 방 안에는 종이 한 장도 겨우 읽을 만큼의 빛만 남았다.

시간이 흐르자 객잔의 밤은 낮과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낮에는 모두가 떠들어 서로를 감췄다. 밤에는 작은 소리 하나가 제 자리를 가졌다. 뒤뜰 말이 발굽을 고쳐 디디는 소리. 바람에 창틀이 아주 조금 밀리는 소리. 벽 너머에서 옷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진소백은 완전히 잠들지 못했다. 얕은 물 위에 누운 듯 의식이 자꾸 떠올랐다. 한 번은 복도 쪽에서 발이 멈춘 듯해 눈을 떴고, 한 번은 옆방에서 낮은 웃음이 들려 숨을 골랐다. 문고리는 그대로였다. 빗장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헐거운 나무는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그가 다시 눈을 감았을 때, 머릿속에는 명단의 먹글씨가 떠올랐다. 스물셋의 이름. 眞少白. 已. 하나가 많다는 말. 노칠. 낙양.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닫히지 않았다. 의원이 상처 가장자리를 맞추듯 생각을 맞추려 할수록, 어딘가가 벌어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진소백은 갑자기 눈을 떴다.

처음에는 옆방 소리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옆방은 조용했다. 오히려 너무 조용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밤바람이 등잔의 남은 심지를 흔들었다. 어깨에 걸친 겉옷이 조금 식어 있었다.

침상이 비어 있었다.

그는 숨을 죽였다. 손을 뻗자 손끝에 봇짐이 닿았다. 그는 그것을 끌어당기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창가에 선 그림자가 보였다.

유란이었다.

그녀는 창문을 조금 열어 둔 채 바깥을 보고 있었다. 달빛인지 거리의 등불인지 모를 희미한 빛이 손끝에 걸렸다. 손가락 사이에 아주 작은 것이 있었다. 흰빛이 한 번 스쳤지만, 천 조각인지 종이인지 진소백은 알아보지 못했다. 유란은 그것을 오래 드러내지 않았다. 손끝이 접히자 빛도 사라졌다.

진소백은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에는 객잔 뒤뜰의 우물과 말 묶는 기둥, 낮은 담이 있었다. 담 너머로는 관문 도시의 밤길이 희미했다. 늦게 도착한 길손 하나가 마구간 쪽에서 주인과 말다툼을 벌이는 소리가 멀리 들렸다가 끊겼다.

유란의 옆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일어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묻고 싶은 말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입을 열면 옆방의 침묵까지 함께 건드릴 것 같았다.

그때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처음엔 잠꼬대처럼 낮았다. 진소백은 알아듣지 못했다. 이어 두 번째 목소리가 더 낮게 대꾸했다. 나무벽 사이 틈으로 말이 긁혀 들어왔다.

“……진소백.”

진소백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봇짐을 움켜쥐었다.

창가의 유란도 움직임을 멈췄다. 접힌 손끝이 창틀 가까이에 그대로 있었다.

옆방에서는 다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그 이름 하나만 밤 속에 흘려보내고, 모두 숨을 죽인 것처럼.

진소백은 천천히 일어났다. 바닥이 작게 삐걱거렸다. 그 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유란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소백도 묻지 않았다.

벽 너머에서, 아주 작은 마른기침이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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